[위기의 인도네시아]3.실직 젊은이 구걸로 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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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마리암 방탕 (18) 군은 요즘 하루종일 길거리 보도블록에 앉아 있다.

그는 주로 최고급 하이야트 호텔과 인도네시아호텔.프레지던트 호텔 등이 빙 둘러서 있는 자카르타 시내 탐린가 (街) 로터리 주변에서 지낸다.

외국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이곳에 초라한 몰골로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심심치 않게 지폐를 던져주는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걸로 밥벌이는 안되지만 그래도 허기진 배를 채워줄 요깃거리를 살 수 있으면 만족이다.

지금은 동냥을 하고 있지만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식용유 공장에서 일하며 당당하게 돈을 벌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외국인에게 돈을 받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카르타 근교에 있는 식용유 공장에 다녔어요. 넉넉하진 않았어도 월급을 받으면서 그런대로 살아갔죠. 지난달말 졸지에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았어요. 사장이 중국인이었는데 인근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일찌감치 문을 닫고 외국으로 도망갔죠. 싱가포르로 갔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됐지만 그는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일꾼들을 버리고 매몰차게 떠난 사장을 원망해야 할지, 아니면 시위대에 욕을 해야할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정부를 욕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직 방탕군은 왜 정부가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정치요. 잘 몰라요. 하지만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이처럼 경제위기는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일하려 해도 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방탕군처럼 거지로 나서거나 폭도가 되기 십상이다.

지난 8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중국계 상점 등을 약탈하는 폭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3%밖에 안되면서 경제의 70%를 장악한 중국계들이 자기들 잇속만 챙겨 물건값을 몇배나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폭동과 물자난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생필품을 구할 수조차 없게 됐다.

자카르타 외곽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부하눈 (45) 은 요즘 도매시장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뭘 사다 팔려 해도 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물건을 올려받는 것도 옛날 얘기다.

이젠 아예 물건을 내놓질 않아 이 구멍가게도 걷어치워야 할 것 같다" 며 울상을 지었다.

인도네시아의 서민들은 경제위기의 고통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무력하게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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