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는 '퇴영의 미학'…생명·죽음의 오버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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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켄우드.리사 라이언.리디아 쳉. 에이즈로 죽은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매플도프 (1946~89) 의 사진 모델이면서 모두 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병으로 죽은 사람들이다.

동성연애자에 에이즈 감염 그리고 그로 인한 죽음 등. 그의 약력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그의 사진 역시 퇴폐적이다.

꽃 한 송이를 찍어도 꽃의 건강한 아름다움보다는 묘한 생식의 이미지를 풍기는 그의 사진이 국내에 소개중이다.

아트 컨설팅 코팩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로버트 매플도프 사진전은 25점의 적은 숫자지만 퇴폐적 아름다움이 외설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8일까지 02 - 720 - 5000) . 색채의 강한 대비에 기하학적이란 인상이 들도록 치밀하게 짜맞춘 구도가 그의 사진 전반에 보이는 특징이다.

이런 틀 속에 꽃이나 누드 남녀를 넣고 그가 셔터를 누르면 생명력이 가득한 육체의 아름다움이나 꽃의 화사함이 단박에 퇴폐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로 변한다.

만개한 꽃이나 대리석 조각처럼 균형잡힌 육체에서 느껴지는 분출하는 생명력이 곧장 정반대인 죽음의 이미지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정점을 보여주면서 건강한 삶보다는 소멸이나 죽음을 연결짓는 퇴영의 미학이 그의 사진이 말하는 테마 중 하나다.

그래서 미국 사진평론가 마크 리빙스턴은 그의 사진을 평하면서 '야만스러운 우아함' 이란 말을 쓰기도 했다.

매플도프는 죽은 뒤 한동안까지 외설적인 사진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근래 새로운 사진 미학을 보여준 작가로 주목받으며 휘트니 미술관과 구게하임 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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