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의 영화 블로그] 인어공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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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가 나온 뒤 그 말은 내가 남편한테 써먹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됐다. 똑같이 술 마시고 밤 늦게 들어와도 아들의 아침 등교를 챙기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쪽은 나이며, 똑같이 집안을 어질러 놓고도 먼저 책임감을 느끼는 쪽도 나이고, 그런 현실이 지겨워 온갖 푸념을 늘어놓을 때도 들은 척하지 않던 남편이 '나도 제발 이런 마누라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미안한 듯 씩 웃고 만다.

그 감독의 새 영화 '인어공주'에서도 마음에 쏙 들었던 건 무엇보다 여자들이 판을 휘어잡는 점이었다. 여자 감독들이 영화판의 1%도 채 차지하지 못하고, 그 여자 감독들도 온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기에는 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서 이처럼 여자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90% 이상을 여배우들의 연기로 꼭꼭 채우는 영화를 보기란 얼마나 드문 일인가. 1000만 관객을 뒤흔들었던 영화나, 세계 영화계나 한국 영화계의 평단을 뒤흔든 영화나 모두 애써 흠을 잡자면 사실 남자 배우들의 매력만이 도드라지는, 남성들의 에너지로 가득 찬 영화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저 남자들의 시선과는 뭔가 다른, 여자들만의 세밀한 감성이 아쉬웠으면서도 가슴속에만 숨겨놔야 했던 관객들에게 '인어공주'는 답답한 가슴을 열어준다. 꼼꼼하게 그려진 섬처녀의 설렘과 절망에 울고 웃은 뒤 오래된 장롱 속 낡은 어머니의 사진첩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 물론 '나도 아내…'에서도 그랬듯 어떤 극적인 긴장감을 이끌어갈 만한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약하고 '팍팍한 세월 속에서 퇴색된 한때의 꿈과 사랑과 희망이 삶을 버티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 역시 그다지 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삶의 한순간이라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라 믿는다면, 당신의 기억에 소박하게 손 내미는 이 영화에 마음의 문을 열 만하다.

이윤정 영화칼럼니스트 (www.cyworld.com/filmpool)

Re : 쿼지모(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모임) 그러면 뭐합니까. 대박날 줄 알았던 이 영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때문에 힘을 못쓰고 있는데, 이래도 스크린쿼터가 철폐돼야 한단 말입니까.

Re : 신유경 전, 큰맘 먹고 엄마와 함께 극장에 갔는데, 감동받은 줄 알았던 엄마는 졸고 계시더라고요. 뭔가 드라마틱한 힘이 약하지 않았나 싶네요. 저 역시 좀 밋밋하다는 생각이….

Re : 오라이! 걸! 흠, 너무 할리우드 영화에 물든 것 아닌가요.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고 내 얘기 같은 영화를…. 감동을 찾는 분은 오라~.이! 앞의 분처럼 자극적인 영화만 찾는 분들은 오라이 오라이!

Re : 나영엄마 저는 목욕탕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직업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기억해 주세요. 목욕 관리사입니다, 목욕 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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