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일본 조선업, 경쟁상대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공업국가로서의 일본이 한물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조선업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 하락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50%나 더 값싼 제품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조선업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이들은 엔고 시대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한국 같은 경쟁국들을 물리칠 수 있는 저비용 구조를 갖추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 한국과 대만의 조선업체들은 일본을 능가했으며 93년에도 일본은 한국에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일 조선업계는 이 기간동안 노동집약적 구조를 첨단 기술의 대량 조립체제로 바꾸었다.

수주 규모로 따질 때 지난 94년 세계 1위를 탈환했으며 각국의 조선업체 가운데 이익을 가장 많이 내고 있다.

일본은 지난 87년 5백70만t의 배를 만들었다.

96년에는 35%나 줄어든 인력으로 1천20만t의 선박을 건조했다.

일본 9대 조선업체들의 매출액은 지난해 6조엔을 돌파했다.

평균 마진율도 87년 마이너스 0.2%에서 5%로 크게 높아졌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조선소에서는 로봇들이 전자파로 금속을 구부리고 금속판 칸막이를 자른다.

컴퓨터실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실물 크기의 배를 고안해 낸다.

홍콩의 월드와이드 조선그룹의 헬무트 소멘 회장은 “인력감축 효과는 엄청나다” 면서 “이는 일본 조선소들이 매우 효과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 말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선박 수주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고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한국과 대만은 최근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조선업체들은 수주량이 늘어나 지난해 12월 전년도 동기 대비 2백67%나 급증했다.

태국의 주타 매리타임사는 일본 히카키사로부터 선박을 넘겨받았다.

“일본이 만든 이 선박은 우리가 한때 교섭을 벌였던 스페인이나 루마니아.중국의 선박들보다 수송 속도가 더 빠르고 한국 선박보다 믿음직스럽다” 고 주타 매리타임사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엔고가 한창이었던 10년 전만 해도 일본 조선업체들은 경쟁국들보다 비싼 배를 만들어야 했다.

지난 86년 일본 9대 조선업체들은 4조엔의 매출을 올렸으나 회사당 평균 9백68억엔의 손실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은 단순했다.

비용을 절감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히타치 조선소의 경우 엔고로 선박 건조 코스트가 높아지자 종업원에 대한 종신고용을 철폐하고 순환근무 및 조기퇴직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또 로봇을 앞세운 대량생산을 강화했다.

엔고는 지난 96년부터 수그러들었다.

미국 조선업체인 아메리칸 프레지던트 라인의 기술자 톰 윈슬로는 “일본은 엔고가 닥치기 전부터 일찌감치 자동화를 시작했으며 엔저 현상이 시작되자 그 효과는 배가됐다” 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