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사상가 不在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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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제우 (崔濟愚.1824~1864) 수운 대신사 (水雲 大神師)가 1860년 동학 (東學) 을 창시해 3년 남짓 포교하다 1864년 40세를 일기로 순교하자 수운 대신사보다 세살아래의 제2대 교조 (敎祖)가 된 최시형 (崔時亨.1827~1898) 해월 (海月) 신사는 약 37년간 포교하면서 사실상 동학의 기틀을 세우고 1898년 순교했다.

지난 1월말 필자는 해월신사의 묘를 참배하고자 여주 천덕산 계곡을 오르면서 퇴락한 유원지 시설과 함께 묘 바로 아래의 조립식 버섯공장들을 보니, 제왕들과 부호들의 드넓은 묘역처럼 호화롭게는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 모두가 너무 소홀히 하고 있구나 하는 자책감과 동시에 이제는 사상가 부재시대에서 사상가 망각시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각처에 산재한 사상가나 성현들의 유적 입구, 불교의 명승대찰 부근, 단군의 얼을 전승하는 일부 명산의 제단, 그리고 천주교 성지 주변 등이 유원지와 오락장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영웅이 다스리지 않고 조직이 다스리는 때라서 생존하는 인물도 외면하는 시대이니 과거 인물의 묘 주변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마는 나라사정이 1백여년 전이나 다름없이 위급한 지경이므로 성현군자들과 사상가들의 유적이 더욱 소중히 여겨진다.

사실 이런 난국일수록 유능한 정치가들의 등장이나 영리한 기업가들의 활동 못지 않게 민족정신과 국민사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혜안을 지닌 사상가들의 출현이 더욱 절실하게 기다려진다.

그러므로 비록 상품광고나 정치가들의 함성보다야 가냘프겠지만, 사색 (思索) 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만이라도 끊어지지 않도록 한 조각 돌만이 지키고 있는 선각자들의 묘는 우리에게 소리없이 훈계하는 스승의 현존 (現存) 과도 같다.

지금은 경제문제 해결과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유일한 최고의 목적처럼 돼 온 국민의 업무 달성 목표로 강요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분열 속에서 살아야 할수록 한 걸음 한 발자국씩 내딛기 전에 항상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며 오늘을 들여다보고 사색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자. 생각하는 사람은 뛰지 않는다.

급하다고 뛰어가면 하루에 십리도 못 가서 주저앉고 말지만, 걸어가면 하루에 백리를 가고도 체력이 남는다.

하루만을 살고 말아야 할 겨레도 아니지만, 우리 국민과 이 나라의 앞길이 십리도 못 가서 주저앉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1백일 경제' 니 '신경제' 니 또는 '1백대 과업' 이니 하는 소리가 발표용 답안지 낭독처럼 들리는 지금, 7천여만명의 생존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종교와 외교와 경제문제는 권력과 언론으로도 하루 이틀에 해결되지 않는다. 흉보면서 닮아간다는 말처럼 부정을 척결한다는 이들이 더 큰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었으니 모두가 불로소득의 의욕을 버리고 오히려 노동의 대가로만 살고, 노동의 대가만큼만 살고자 하는 정신회복이 일부 국민에게 선행되게 해야 겠다.

따라서 온 국민이 자신에게 주어진 체력과 재력과 권력을 70%이내로만 써야지, 1백%를 다 쓴다든가, 없는 힘까지 있는 체 하며 남의 힘까지 빌려 쓰면 개인의 건강도, 기업의 운영도, 정치인들의 권좌도 교각살우 (矯角殺牛) 의 무대와 극본이 되기 쉽고, 오늘의 사태반복이나 연속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가게물건도 가게도 가게터도 다 팔더라도 집안의 족보는 지켜야 하듯, 땅도 기업도 은행도 노동력도 노동권도 모두 팔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팔아서는 안된다는 정신' 과 '판 것은 언젠가 다시 사와야 한다는 의지' 까지 덤으로 껴서 주지는 말자. 정신과 사상의 현장을 무시하고 괄시하지 않도록 하자. 국민정신과 민족사상의 원천이며 학교인 선각자들과 관계된 성지 주변을 불로소득자들의 식도락과 유흥장으로 바꿔 온 지난 몇 년간이 오늘의 그릇된 사고방식과 경제현실이 급성장한 시기였다.

오늘만을 생각하는 오락과 유흥, 상업과 향략 사업에 내일을 기약하는 사상과 정신의 유산을 매각하지 말아야 하겠다.

변기영〈천진암성지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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