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 막는 한심한 행정]下.<끝>외국선 어떻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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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6년 10월 영국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한 식당. 현지 취재차 방문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던 하워드 비트 산업개발청 투자담당국장은 식당에 들어오는 한 동양인을 보고 황급히 뛰어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 뒤 돌아왔다. 주인공은 벨파스트에 '유로파툴' 이란 조그마한 현지법인을 세운 한국의 중소절삭공구업체 양지원공구의 宋지원 사장이었다.

고위 공무원이 중소기업인에게 그처럼 정중히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한국 기자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宋사장은 "이곳에선 흔히 있는 일" 이라고 가볍게 받아넘겼다.

벨파스트에 진출해 있는 위성방송 수신기 제조업체인 대륭정밀 신철 지 사장도 "공장 설계도에 서명만 하면 일절 다른 서류가 필요없고 정부가 완벽하게 공장을 지어 열쇠를 넘겨준다" 며 현지 공무원들의 서비스정신을 칭찬했다.

영국.아일랜드.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열성을 다 해 뛴다.

공무원의 자세는 물론 투자행정의 틀 자체가 다르다.

투자상담에서부터 최종적인 공장 가동까지 필요한 절차를 투자전담기구에서 불편없도록 처리해준다.

말 그대로 '원스톱' 서비스다.

영국은 현재 세계 32개 주요 투자유치 대상국에 대영투자국 (IBB) 소속 상담전문가를 파견, 유치활동을 펴고 있다.

이와 별도로 각 지역개발청에서도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한국을 제치고 다우코닝 투자를 유치한 말레이시아도 15개국에 해외사무소를 설치, 유치 세일즈를 펴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투자유치를 위한 별도 조직이 없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貿公) 해외사무소나 대사관은 유치활동엔 아예 관심이 없다.

영국.아일랜드 등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관련 인허가 절차를 잘 모른다.

투자유치 담당 공무원들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인허가 절차는 길어야 3개월이며, 투자 결정후 1년 정도면 공장을 돌릴수 있다.

투자 초기에는 세금.임대료 등을 대폭 깎아줘 초기 정착비 부담을 줄여준다.

우리 정부는 다우코닝이 완전히 등을 돌리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94년 '세계화' 정책을 표방하면서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 고 공언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투자환경은 나아진 게 없다는 게 외국인들의 평가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도 최근 똑같은 다짐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외국인 투자자유지역과 투자행정 전담창구 설치, 규제 완화, 입지 지원 등 투자유치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외국의 투자유치 활동사례에서 보듯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기업활동을 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투자행정과 서비스체제를 갖추는 게 급선무다.

산업연구원 신현수 (申鉉秀) 박사는 "외국인 투자담당 창구를 일원화하되 실권을 갖도록 해야 하며 공무원뿐만 아니라 변호사.회계사.컨설턴트 등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 종합서비스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재훈·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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