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토론 문화 위해 인증제 도입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진리의 섬광은 서로 다른 견해들이 부딪칠 때 나온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또 내 생각을 정리해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리로 향한 길이라는 뜻이겠지요. 토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강치원(56·사진) 강원대 사학과 교수의 말이다. 토론을 이야기할 때 빠뜨리면 섭섭한 인물이 강 교수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은 물론 여러 지상파 방송에서 토론 전문 진행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렇듯 한국 토론 문화의 선봉에 선 그가 이번엔 ‘토론 인증제’의 도입을 주창하고 나섰다. “한국에 제대로 된 토론 문화가 없다는 사실에 오랜 기간 안타까워하다 벌인 일입니다. 토론 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목표로 한 ‘원탁토론 아카데미’도 꾸렸습니다.”

한국의 토론문화, 무엇이 문제일까. “한국에 제대로 된 토론 문화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어요. 토론이라기보다 각자가 준비해온 원고를 목청껏 소리 높여 읽는 것이 현재의 토론 문화입니다. 선거 후보자 토론이며 방송 토론이 그렇지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건 토론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말은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정리한 토론의 정의는 “남녀노소를 떠나 모든 토론자가 대등한 거리에서 공정한 기회를 갖고 서로 의견을 듣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 토론 문화의 문제점의 근원은 어디 있을까? 그는 한국의 유교 문화와 빨리빨리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의 경험을 끄집어냈다. “두 가지 방식의 수업이 있더군요. 세미나 식 수업과 교수의 일방적 강의였어요. 충격적이었던 건 일방적 강의는 출석도 안 부르는 부가적 수업에 불과했고, 핵심은 세미나식 수업이라는 점이었지요. 한국으로 치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토론으로 지식을 쌓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도 예를 들었다. “미국은 양당제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양자토론의 문화가 발달했지요. 선거 후보 토론만 하더라도 우리와는 너무 다르지요. 토론뿐 아니라 청중 앞에서의 연설 문화도 틀려요.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원고를 보면서 읽기만 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는 청중과 함께 호흡하지요.”

그가 주창한 ‘토론 인증제’는 교육 현장에서 토론 문화의 ‘가나다’를 가르치자는 게 취지다. “일단 학생들이 앉는 방식부터 잘못됐어요. 모두가 선생님을 보고 일렬로 앉는 게 아니라 각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U자형으로 앉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위해선 토론 지도사의 양성도 필수적이지요.”

이런 모든 것들을 양성하는 곳이 그가 만든 ‘원탁토론 아카데미’다. 실제로 교육관련 전문가 및 교육인적자원부와도 협력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일단 강 교수는 자신이 맡은 수업부터 토론식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저에게 ‘1주일 내내 교수님 수업만 생각했다’는 얘기를 종종 합니다.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하는 수업이란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토론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 생각도 정리해야 하고 상대방의 논리에도 미리 대비를 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지요.”

그는 토론 문화가 개선되면 가정과 일터, 나아가 사회 전반의 문화가 달라질 것이라 자신했다. “가정에선 부부가, 직장에선 상사와 부하가, 학교에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게 됩니다. 이게 토론 문화의 힘이에요. 토론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