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 다시 호각의 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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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결승 1국> ○·쿵제 7단 ●·이세돌 9단

제8보(57~64)=기질이란 참 못 말리는 것이다. 흑▲로 움직이자 백△로 눌러 막았는데 이 흑▲에는 돌을 죽이기 싫어하는 이세돌, 위험을 등에 지고 타개하기를 깨소금처럼 즐기는 이세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참고도 1’은 어제 이미 보여 준 그림이다(6은 A도 있다). 이 그림을 다시 보여 주는 것은 이게 결정판이며 이렇게 깨끗이 버렸으면 흑이 크게 우세했기 때문이다. 미래 가치는 물론이고 당장의 산술적 계산으로도 매우 유리한 바꿔 치기였던 것이다. 문득 한 가닥 의문이 머리를 휘감는다. 왜 천하의 고수라는 이세돌만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돌을 죽이기 싫어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흑은 재차 57로 뛰어 살아간다. 백은 60으로 두텁게 잡아 둔다. “이래서는 다시 호각의 형세입니다”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61로 다시 뛰자 62의 삶. 이 대목에서 의문이 약간이나마 해소된다. 61이 선수라는 사실, 그 때문에 흑 대마가 살아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사실, 게다가 62의 삶을 강요하는 즐거움. 이것이 이구동성으로 흑이 좋다는 ‘참고도 1’을 외면한 이유라면 이유였을까. 63이 모자에서 다시 이세돌 9단의 기질이 드러난다. ‘참고도 2’ 흑1은 이세돌의 눈엔 화초바둑일 뿐이고, 63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세돌. 그러나 64는 어떻게 받나.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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