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인간 방패’ 작전 … 난민 수십만 생사 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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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스와트밸리를 중심으로 정부군과 탈레반 반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면서 이 지역에 사는 수십만 민간인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주부터 파키스탄 정부군의 대대적 공세가 시작되자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르피가로가 9일 보도했다. 탈레반 반군들이 스와트에서 민간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주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쳤으며, 최대 도시인 밍고라에서만 약 50만 명의 민간인이 물·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사실상 감금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정치분석가들은 “핵무기를 보유한 파키스탄에 경제적 위기 이외에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인도주의적 위기까지 겹쳤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결사적인 피란 행렬=AP통신은 10일 아침(현지시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수천 명의 공포에 질린 민간인이 대부분 걸어서 스와트를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그동안 통금 조치에다 파키스탄 정부군과 탈레반군의 교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던 사람이다. 밍고라에서 18명의 가족과 친척을 거느리고 피란길에 오른 레흐마트 알람(40)은 “옷가지와 먹을 것만 챙겨들고 무조건 집을 나섰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알람은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피란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주 스와트에 사는 민간인들에게 현지를 떠나라고 촉구했고, 이미 수십만 명의 주민이 탈출했다고 AP는 전했다. AP는 그러나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기 위해 몸부림친다”며 “유엔 캠프에서 식용유나 담요 같은 생필품을 훔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관리들은 “조만간 통행금지가 다시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탈레반의 방해로 스와트를 빠져나오지 못한 민간인이 대규모 희생될 가능성도 크다. 목격자들은 스와트에서 수십 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부상했다고 전했다.

◆전면전 임박=유수프 라자 질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7일 대국민 TV연설에서 “조국의 명예와 위엄을 회복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군에 탈레반 전사들과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선언했다. 정부군은 이날 탈레반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데 이어 9일에도 무장 헬기를 동원해 밍고라의 탈레반 아지트를 공격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과의 전면전을 위해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전선에서도 병력을 차출하고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9일 미국 공영방송 PBS와 인터뷰에서 “(대탈레반 작전을 위해) 인도와 국경 지대에 배치됐던 병력 가운데 일부를 동원했다”며 “필요하다면 더 많은 병력을 이동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르피가로는 “파키스탄 군이 탈레반과 끝장을 보려 한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2년 전부터 ‘파키스탄의 작은 스위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스와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2월 탈레반의 무력 포기를 조건으로 스와트에 탈레반식 통치를 허용하는 평화협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이를 깨고 세력 확장에 나서자 정부군은 지난주 처음으로 스와트 인근 부네르와 디르 지구 등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또 4일에는 탈레반이 밍고라 등에 진주해 정부 청사와 경찰서 등을 장악하자 스와트 공세에 나서 지금까지 수백 명의 탈레반 대원을 사살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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