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율 효과에 안주해선 경기회복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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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최근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에 이어 주요 수출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예상 밖으로 좋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의 조기 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부쩍 늘어났다. 경기회복의 조짐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서의 상승세뿐만 아니라 간판 수출제조업의 실적 호전이라는 실물부문의 회복세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우리 수출기업들이 선전을 펼치고 있는 것은 장한 일이다. 그나마 이들 수출기업이 버티고 있기에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경기침체를 잘 이겨나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수출 호조를 두고 경기회복을 단정짓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우리 수출기업의 실적이 환율 변동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최근 글로벌 기업과 한국기업의 경영성과’ 보고서는 최근 국내 기업들의 실적 호전이 환율 효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고서는 자국 통화 기준으로 미국·일본·유럽 기업들은 지난해 매출증가율이 모두 떨어졌으나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매출증가율이 전년의 13.2%에서 24.3%로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 환율 효과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은 주요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더 큰 폭으로 추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지난해 원화가치의 급락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원화가치의 하락에 의한 실적 호전은 원화가치가 오를 경우 정반대로 나타난다. 최근 원화가치가 강세를 보이자 전자·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들의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환율 덕에 좋아졌던 실적은 결국 환율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1300원에서 1200원으로 오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2분기 영업이익이 12% 줄어든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부 증권사는 원화가치가 달러당 1200원이 될 경우 1분기 깜짝 흑자를 보였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환율 효과에 의한 실적 개선이나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는 한계가 있을뿐더러 자칫하면 경기회복에 대한 착시현상만 부를 우려가 크다. 널뛰듯 변하는 환율에 기댄 실적 호조는 오래 계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 노력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해법은 하나다. 환율 변동에 좌우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환율 변동에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환율에 기업의 운명을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개별 기업 차원은 물론 산업단위로도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개별 기업은 비용절감과 기술개발을 통해 부단히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이와 함께 산업별 구조조정도 서둘러야 한다. 각 산업 내의 비효율과 거품을 신속히 걷어내야 경기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