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로메르 감독 '마르셀의 추억'…슬픔조차 아름다운 유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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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유년시절의 추억은 슬픔조차도 아름답다.

남의 추억을 함께 더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질 수 있는 것은, 그 아름다움의 실체가 바로 '사람' 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브 로메르 감독의 '마르셀의 추억' 의 미덕은 따스함에 있다.

스크린 안에 가득한 눈부신 햇살이 그렇고, 그 햇살아래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가족들의 얘기가 그렇다.

시골 별장을 향해 주말마다 펼쳐지는 가족의 나들이. 말은 화려하지만 온가족이 피난민처럼 가방과 보따리를 잔뜩 나눠메고서 무려 2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주인에게 들킬세라 허리를 굽히고,가슴을 조리며 종종걸음으로 개인 소유의 성을 지나는 가족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덩치가 크고 위세가 당당한 남의 성앞에서,가진 것이 없었기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그런 가족애다.

추억의 노트에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빠질 리 없다.

한 순간에 소년의 넋을 빼앗고 그를 노예로 전락시켰던 소녀 이자벨. 자기 시중을 들게하고 메뚜기까지 먹이는 등 '사랑의 복종' 을 이끌어낸 그녀의 맹랑함조차 정겨운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는다.

시종일관 쿡쿡 웃음을 자아내던 영화가 갑자기 숙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끝날 즈음이다.

어머니도, 동생도, 친구 릴리도 모두 세상을 떠난 그 자리에서 성인이 된 주인공이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 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대목이다.

'시네마 천국' 이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 추억을 더듬었다면, '마르셀의 추억' 은 자연과 가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추억을 더듬었다.

영화 속의 햇살이 유난히 눈부셔보이는 것은 그 까닭일 것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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