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음반 낸 스물한살 박정현…LA서 날아온 스물한살 새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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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스물한살 박정현의 데뷔음반은 1분에서 7초 모자라는 짧은 첫 곡 '인트로' 에서 매력이 발견된다.

자작 시구 (詩句) '마음의 평화 한 조각' 을 반복하는 그녀의 음성은 펌프에서 콸콸 튀어나오는 시원한 물줄기 같다.

매혹적인 목소리 속에는 달콤한 팝, 격렬한 올터너티브, 그리고 세련된 리듬 앤드 블루스가 뭉쳐 소용돌이친다.

얼핏 잔잔해 보이는 노래 표면 아래엔 왠지 깊고 신비한 음원 (音源) 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어지는 윤종신 작곡의 타이틀곡 '나의 하루' 는 이 원초적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자기만의 개성과 힘을 뽐내던 그녀는 어느새 한국 발라드의 관습을 조신하게 답습하는 가수초년생으로 변해있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 이어지는 '피에스 아이 러브 유' 와 트랙 중간부 '요즘 넌' 등 가요의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곡에서 그녀는 개성을 되찾는다.

음반에서 아쉬움을 느낀 사람은 콘서트에서 그녀에 대해 좀더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흰 이빨을 반듯이 드러내며 흑인풍의 넉넉한 웃음을 뿌리는 그녀는 감정이 풍부히 우러나는 미국형 몸짓으로 자기만의 무대를 창출해 낸다.

음역은 메조 소프라노로 높은 편이 아니다.

이런 약점을 자기만의 장점으로 전환시키는 매끈한 가성에 진짜 매력이 있다.

유난히 신인 여가수가 많은 올초 가요계에서도 돋보이는 '월척' 이다.

단순한 노래솜씨를 넘어 자기 생각이 담긴 시적인 가사를 쓸 줄 알고 곡을 짓는데도 재간이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LA에서 목회를 하는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재미교포 아가씨. 백인.흑인.히스패닉.멕시코계 등이 뒤섞인 다민족 학교를 다녔다.

어린 시절 자신이 미국인인줄 알았던 그녀는 점차 미국과 한국이 반반씩 섞인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게 됐다.

“미국에선 '다름' 이 자연스러웠는데 한국은 '같음' 이 지배적인 곳이어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는 그녀는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경계선상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언어로 팬들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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