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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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33면

임천(任天). 하늘의 이치에 맡긴다는 말이다.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任天堂)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원래 화투짝을 만들던 회사여서 운이나 끗발을 상징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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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타 사토루(岩田聰) 사장은 최선을 다해 보고, 그 결과는 하늘에 따른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 최선에 하늘도 움직였나.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닌텐도가 최근 발표한 2008년도 결산 실적은 경이롭다. 매출 1조8386억 엔, 순이익 2791억 엔. 창사 이후 최고 기록이다.

액수도 액수지만 그 효율이 무섭다. 얼마를 팔아 얼마를 버느냐, 즉 수익성을 따지는 지표로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이란 게 있다. 이게 닌텐도의 경우 24.4%다. 1000엔어치를 팔면 244엔을 남기는 셈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평균치는 6%를 조금 넘는다.

수익성의 원천은 흔히 첨단기술에 있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닌텐도는 다르다. 닌텐도는 자사 히트 상품에 ‘첨단’이나 ‘차세대’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언론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이와타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닌텐도는 차세대 게임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생각을 바꾸면 이미 나와 있는 기술로도 얼마든지 새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닌텐도가 주력 업종을 화투에서 게임기로 바꿀 때부터 중시해 온 노선이다. 닌텐도를 오늘날의 게임 메이커로 발전시킨 요코이 군페이(橫井軍平·1941~97)는 사원들에게 최첨단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했다. 1965년 전기기술자로 입사해 패미콘·게임보이 등 전설적인 히트작을 개발한 그의 지론은 이렇다.

“돈 버는 상품을 만드는 데 최첨단 기술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비싸고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사원들에게 “엄청난 물건을 만들려 욕심 내지 말고, 팔리는 걸 만들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재래기술의 수평적 사고’라고 표현했다. 평범한 기술을 전혀 생각지 못한 용도에 사용해 히트 상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가 입사해 처음 만든 건 장난감이었다.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그냥 한번 해 본 일이었다. 심심해서 공장 비품으로 장난감을 만들다 사장에게 들켜 혼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걸 상품으로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게 ‘울트라 핸드’라는 간단한 장난감이었는데, 이게 140만 개나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닌텐도의 개발 철학은 여기에서 나왔다고 봐도 된다. 국내에서 50만 대가 팔렸다는 위(Wii)도 그렇다. ‘두 손을 써야 하는 게임 컨트롤러를 한 손으로 잡고 놀 수 없을까’ ‘몸으로 느끼며 할 수 있는 게임은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개발이 시작됐다고 한다. 닌텐도-DS와 같은 멀티 스크린형 게임기도 ‘두 개의 게임을 동시에 할 수 없을까’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렇다면 첨단기술이 없어서 돈을 못 버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히트 상품은 널려 있는데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따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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