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타당성도 경제성도 없어 '수도이전' 재앙 부를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하나의 사업을 계획, 시행할 때는 그 사업이 그 지역사회나 국가에 편익을 제공하는지, 부작용과 후유증 없이 계획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내용으로 하는 타당성 조사가 심도있고 면밀하게 수행돼야 한다.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다음으로 경제성이 검토돼야 한다. 또 그 사업에 투자되는 비용보다 편익이 크게 되는지 비용-편익비(比)가 산출돼야 한다. 타당성의 기여도, 목적 달성 및 경제성의 검토에는 대안이 필수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타당성과 경제성이 높게 평가되면 이들 사항에 관한 해당 지역사회의 의견과 전문가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과 예상될 수 있는 문제점을 도출해 이들을 설계 시행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공청회를 연다.

이와 같이 합리적이고 순리적인 절차를 밟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또한 투자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이전이란 역사적인 초대형 국가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급물살은 대홍수에 수반되는 현상으로 우리 인간과 사회에 엄청난 재앙을 안겨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도 이전의 급물살 자체가 파행적이고 위험한 졸속 처사임이 주지돼야 한다.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의 새 수도 건설목표가 "국가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에 대한 기여"라고 한다. 그렇다면 첫째, 수도 이전의 타당성이 있는가? 이는 국가균형발전이기보다 한 지역의 집중개발로 당초 목적과는 거리가 멀고 상반된 계획이다. 진정 국가균형발전을 위한다면 5~6개 지역을 기술 산업단지와 중소기업육성단지로 특화, 발전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제고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 해소도 목적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있다. 새 수도의 수용목표가 50만명이라고 하는데 자녀교육을 위해 가족을 서울에 남겨놓는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로 수도권에서 빠져나가는 인구는 훨씬 적을 것이다. 인구 50만명을 분산하는 효과를 위해서라면 교육과 편의시설이 훌륭한 분당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해 민간기업을 유치하는 것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 국가경쟁력에 대한 기여가 가능한가? 국제사회 변화의 특징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기업합병.유럽연합(EU) 등이 이를 웅변한다. 국가경쟁력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 수도로서의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수도로서의 경쟁력 역시 규모가 커야 한다. 수도로서 국가경쟁력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행정력뿐만 아니라 금융.통신.교통.교육.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동북아의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도쿄(東京).베이징(北京) 및 상하이(上海)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수도 서울 이외는 대안이 없다. 생산성이 높은 수도권의 와해로 인한 경제성장률의 저하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셋째, 타당성이 없는데 경제성이 있겠는가? 새 수도 건설에 120조원이란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데, 이에 따른 편익이 120조원을 상회하겠는가? 새 수도 건설로 행정력의 효율이 지금보다 어떤 점에서 얼마나 개선될 수 있는가? 인구 50만명에 의한 수도권의 과밀해소에 의한 편익이 단 몇억원으로라도 산정될 수 있는가? 이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첨단기술 축적과 탄탄한 제조업으로 무장한 일본과 5년 뒤면 우리의 기술력 우위를 추월할 정도로 무섭게 쫓아오는 중국을 생각할 때 많은 예산을 과감히 투자해도 경쟁이 어려울 상황이다. 그런데 새 수도에 120조원을 투입한다면 앞으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는 현재보다 현저히 감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의 생존을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타당성과 경제성이 결여된 수도 이전을 표를 얻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꼭 감행해야 하는가?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수도 이전의 타당성과 경제성을 구체적.정량적으로 분명하게 제시한 연후에 수도 이전에 대해 국민의 심판에 따라야 할 것이다.

윤태훈 한양대 명예교수.토목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