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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부활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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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미국과 한국은 어느 때보다 서로 우방답게 처신하고 있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감안,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내의 치열한 반대여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6자회담에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내놓은 대북 제의에 대한 미 행정부 내 비판을 일축했다. 켈리 차관보는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중유 지원과 안전보장, 그리고 경제제재 해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다단계 해결방안을 제시했었다.

공식적으론 이 같은 방침이 서로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돼 있진 않다. 그러나 상호주의 정신에 입각한 '주고받기'의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요인이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정부로선 신뢰성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파병 약속을 뒤집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에 한국이 참여하려는 것도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라크 파병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동기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이 6자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는 데에도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로지 북한의 핵무장을 가져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다자간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데도 한.중.일 3국은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라고 미국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리비아의 최고지도자인 카다피처럼 실용적인 노선으로 선회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을 유인할 실질적인 방안이 실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장 계획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제재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조차 경제 지원 등 유인책의 효과를 검증해 보는 게 우선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번 켈리 차관보의 대북 제안은 그런 면에서 검증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미국 측 제안을 단순한 전략적 조치라며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이 이를 거부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이 제안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시 행정부는 처음으로 (다자간 협상의 틀 안에서) 북한 대표들과의 양자 간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또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철회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일 양국의 대북 중유 수출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게다가 조건부이지만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도 언급했다.

일부에선 이번 제의가 조건부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핵 비무장 약속을 교묘하게 파기하고 핵비확산조약에서 탈퇴한 나라에 대해 어떻게 전적으로 양보할 수 있겠는가. 3개월은 북한이 그간의 핵 게임을 중단하고 최근의 경제 원조에 대한 대가로서 핵 활동을 철회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만약 북한이 이 같은 제안을 검토키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보기로 하자. 그러나 북한은 이제 그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어느 정도라도 증명해야 한다. 어떠한 우라늄 농축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핵개발 계획을 동결하겠다고 제의하는 것은 모순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미 간 동맹관계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양국 정부는 북한이 제기한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핵활동을 원상 회복시키고 경제 현대화와 국민의 복지를 위해 많지 않은 보유자원을 투입하도록 북한을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나라가 조화로운 전략을 만들어 유지하지 않는 한 한.미동맹은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미 국무부 차관.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정리=남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