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실업대란' 신음…각국 1,800만명 실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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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럽대륙을 휩쓸고 있는 '1, 800만 실업과의 전쟁' 이 해가 바뀌면서 더욱 격화되고 있다.

프랑스 실업자들의 대규모 항의시위에 자극받은 독일 실업자들이 지난 5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남으로써 라인강 이남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전선 (戰線) 이 라인강 이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지난 5일 독일 뉘른베르크 소재 연방노동청. 1월중 실업통계를 발표한 베른하르트 야고다 노동청장은 곧바로 1백여명의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1월중 실업자 4백82만명, 실업률 12.6%로 전후 (戰後) 최고수준을 기록했다는 것이 발표내용이었다.

같은 시각 베를린에 모인 시위대는 "콜은 물러나라" 는 구호를 외치며 2000년까지 실업률을 절반으로 끌어내리겠다던 그의 지난번 선거공약을 상기시켰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3천여명의 시위대가 지방 노동사무소에 몰려가 그중 4백명이 밤샘 점거농성을 벌였다.

유력지 디 차이트는 통독 (統獨) 후 7년만에 실업자가 두배인 5백만명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불어나도록 손을 못쓴 헬무트 콜 정부의 실정을 질타했다.

특히 실업률이 21%로 옛 서독 지역 (10.5%) 의 두배나 되는 옛 동독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서독 출신 정치권에 대한 심각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오는 9월27일로 예정된 총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4기 (期) 연속 집권을 노리는 콜 총리는 급한대로 지방자치단체가 장기 실업자를 고용하고 이들에게 지급할 사회복지 예산을 임금으로 전용하는 방안을 마련,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실업률이 12%대인 프랑스도 독일처럼 사회보장제도에 발목이 잡혀 정부로서 운신의 여지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명을 고용할 때마다 순임금의 절반을 사회보장세로 추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고용창출을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점을 정부도 잘 안다.

이 때문에 영국처럼 사회보장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사회보장제도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정치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창출 구상은 일종의 마지막 '대실험' 이라 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현행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신규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고용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쪽에선 근로시간 단축이 통상임금의 1.5배에 이르는 추가 근로수당만 증가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공장의 해외 이전을 촉진하는 등 오히려 실업만 늘어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10일 (현지시간) 실시되는 주간 근로시간 단축 법안에 대한 프랑스 하원의 표결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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