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과잉·혼선…앞뒤 안맞고 손발도 안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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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혼선을 빚는 정책들이 많다.

정책을 발표하는 '사공' 이 많은데다 너도나도 개혁 일선에서 의욕을 앞세우다보니 무리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유형도 가지가지다.

이른바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이나 기조실.회장실 폐지처럼 국제통화기금 (IMF) 의 요구를 확대 해석해 밀어붙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은행지분 소유에서 내국인을 차별하고 정책금융을 늘리는 등 IMF가 요구한 '자유로운 경쟁' 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도 있다.

정부가 신종적립신탁을 만들어 금리경쟁을 부추겨놓고는 갑자기 고금리 폐해를 내세워 금리인하를 '지시' 하는가 하면 앞뒤 안가리고 종합금융사를 무더기 폐쇄해놓고서는 기업어음 (CP) 시장의 숨통을 튼다며 갑자기 외국인에게 전면개방을 발표하는 등 앞뒤가 안맞는 정책도 비일비재하다.

현 공정거래법상에도 상호지급보증 미해소분에 대한 과징금을 물리는 제도가 있음에도 느닷없이 벌칙금리를 물리겠다고 나섰다가 다시 과징금제도를 손질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식의 졸속도 나타난다.

현실을 모르고 만든 제도들은 그 뒤 다시 손질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의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지난달부터 재계를 혼란에 몰아넣은 빅딜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여당과 정부는 기업들에 빅딜계획서를 이달 24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가는 없던 일로 했으며, 이번에는 회장실.기조실을 즉각 폐쇄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요구를 받은 기업들로서는 뭔가 하지 않을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연구소 임원은 "빅딜을 하라고 해 최근 밤을 새워 관련자료를 정리하다가 이번주부터는 회장실.기조실 폐쇄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고 밝혔다.

좌승희 (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우리나라 재벌은 실체가 없다.

지주회사처럼 법적인 실체를 만들어준 뒤 책임지게 하는 게 순리다.

책임질 제도는 없는데 회장실.기조실을 없애면 이름만 달라질 뿐 또다른 조직을 만들도록 조장할 뿐" 이라고 지적했다.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지금은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일례로 정부도 추경예산을 만들어 9곳에 보고해야만 했다" 라며 "새 정부 대통령비서진도 인선이 됐으니 좀더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추진이 절실한 시점" 이라고 강조했다.

고현곤·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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