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대학도 '빅딜'해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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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시대에 대학도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 5년동안 30여개의 신설대학이 생겼고, 2003년이 되면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4년제와 2년제 대학 입학정원이 더 많게 된다.

결국 학생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더구나 편입학이 확대됨에 따라 지방대학 재학생들이 서울로 많이 빠져나가게 돼 지방대학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학졸업생들도 취업을 못하게 됨에 따라 대학지원율도 떨어지게 될 것이므로 대학들의 경제적 고충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결국 경쟁력 있는 대학과 경쟁력 있는 학과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학간판만 달면 정부에서 정해준 정원을 채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모두 옛말이 돼가고 있다.

필자는 이미 2년전에 대학간에도 빅딜 (Big Deal.사업교환) 을 제의한 바 있다.

그때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나, 이제는 심각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됐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별로 특성이 없이 백화점 식으로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80개가 넘는 학과를 모두 일류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것은 우리의 재원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한 도시에 수준이 비슷한 대학이 두 개 있다고 가정하자. 두 대학이 모두 물리학과와 화학과를 가지고 있는데, 실험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전임교수도 학과당 6~7명밖에 안된다.

이 경우 두 대학이 합의, 한 대학에는 물리학과만을 갖고 화학과는 다른 대학으로 보내면 교수와 학생은 두배로 늘어나게 된다.

화학과를 가지게 되는 대학도 마찬가지가 된다.

두 대학이 사립대학이면 교수들의 연금문제도 쉽게 해결된다.

모두 사학연금재단의 연금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를린에서는 이같은 학과교환이 이루어졌다.

독일 통일 이전에 동베를린에는 홈볼트대학이 있었고, 서베를린에는 베를린자유대학과 베를린공대가 있었다.

그러나 통일 후 베를린 시정부가 3개 대학의 운영비를 모두 지원해야 되자 중복된 학과를 통합했다.

훔벨트대학의 전기공학부는 베를린공대로 통합했고, 그 대신 베를린공대에서는 인문계 학과등을 통합시켰다.

경제력이 세계 제3위인 독일도 이렇게 하는데 우리나라 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같은 도시에 중복된 학과를 몇 개씩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은 학과신설을 너무 쉽게 생각해왔다.

전임교수를 한두명 확보한 후 학생을 모집해서 등록금 수입으로 운영 했으니, 그 학과에 필요한 도서가 제대로 확보될 리가 없었다.

실험시설 같은 것도 시늉만 해왔다.

그런 학과에서 교육을 받고 졸업하는 학생이 사회에서 환영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제는 대학도 구태의연한 운영방식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게 됐다.

현재는 이런 제안에 코웃음치는 사람들이 많겠으나, 수년 내에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 학과를 아예 없애고 교수와 학생들을 내보내는 것보다는 다른 학교로 보내고, 대신 상대방 대학의 다른 학과를 받아들여서 학과수는 줄이고 기존학과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장수영 (포항공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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