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정리해고 곳곳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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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기도 분당의 모 백화점은 지난해 12월 직원 41명에게 1주일내에 사표를 제출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내렸다.

해고 대상자들은 회사측이 본인의 의사를 묻지 않았고 급여삭감 등 해고회피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며 근로자대표와의 사전협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점을 들어 거세게 반발했지만 회사측은 해고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회사측이 사표를 내도록 요구한 41명 전원은 지난해말 전원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백49억원의 흑자를 낸 대기업 계열 L사는 최근 경영난을 이유로 6백여명의 직원에 대해 팀별로 사직원을 내도록 강요했다가 고발당했다.

이 회사 직원 李모 (36) 씨는 "최소한의 해고회피 노력조차 없었고 친소관계에 따라 팀장이 주관적으로 퇴직자를 선정하는 등 해고기준도 명확지 않았다" 고 불만을 터뜨렸다.

노사정 대타협에 따라 정리해고에 관한 법제화가 곧 이뤄질 전망이고, 적지 않은 사업장에서 이를 고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리해고의 앞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 바람 속에서 상당수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사직통보를 해 사원들이 '기준이 뭐냐' 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기업은 흑자를 내고 있는데도 뚜렷한 기준도 없이 무차별 해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정리해고가 법제화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인 절차와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는 관행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노사간 분쟁이 극심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여성 근로자나 노조원이 정리해고의 우선순위가 될 경우 이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될 가능성도 크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한 뒤 불응한다고 해고하면 부당해고가 된다" 며 "따라서 근로자가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며 버티는 것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수단이 된다" 고 말했다.

반면 해마다 사원 개개인과 재계약을 맺는 연봉제 방식을 택하고 있는 한국IBM과 체이스맨해튼 은행 등 외국계 회사의 경우 인사의 투명성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평가자가 수시로 평가대상 사원과 면담을 통해 고과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한국IBM은 간부사원은 물론 동료 직원들과 고객까지도 평가에 참여시켜 고과점수를 매기도록 한 뒤 해당 사원에게 통보하는 객관적인 평가방식을 택하고 있어 승진.감봉은 물론 퇴직의 경우에도 누구나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중앙대 김대모 (金大模.경제학) 교수는 "사용자가 뚜렷한 기준없이 일방적으로 퇴직을 강요할 경우 퇴직자들의 불만이 고조돼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며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인사공개주의 원칙에 따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정제원.고정애.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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