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신국판 미니월간지 창간 붐…잡지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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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같은 불황엔 일단 몸을 사리는게 인지상정이다.

괜히 새로 일 벌였다가 가뜩이나 어려운 때 본전도 못 찾기 십상이니까. 그런데 '미니월간지 (誌)' 에 이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통의 문학계간지들이 책값인상.지면축소.휴간 등 '초비상체제' 에 들어간 와중에 이 변형신국판 크기 2천원짜리 잡지는 오히려 앞다퉈 고개를 내미니 말이다.

'열린 생각' (97년 12월 창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 (98년 1월) '좋은 느낌 좋은 만남' (98년 2월) 등이 바로 그 주인공. 여기에 '해피 데이스' (97년 9월) 와 최근 1~2년 사이에 생긴 '행복' (통권 15호) 이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 (통권 21호) 와 10만부가 넘는 부수를 자랑하는 소잡지계의 베테랑 '좋은 생각' (통권 73호) 까지 가세한다.

물론 이 분야의 원조격인 '샘터' (통권 336호) 역시 건재한 채 말이다.

수요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법인가.

'좋은 생각' 편집진 윤필교씨의 분석을 들어보자. “힘들고 고달픈 시대엔 사람들이 지적욕구보단 감성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려고 하게 마련이다.

특히 요즘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일상의 이야기가 그 어떤 때보다 절실한 것 같다.”

이름이 비슷한 미국잡지를 모델로 삼아 5호까지 발행했던 '리더스 투데이' 는 이번달부터 '해피 데이스' 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제호와 편집스타일을 바꾼 속사정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유익한 정보제공이라는 원래 취지가 많이 꺾였다.

교훈.계몽보다는 독자들이 평소 얘기하고 싶었던 내용을 담은 잡지가 많이 팔리는 추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는 게 이원식 편집장의 설명이다.

이름부터 '해피' 니 과연 행복하고자 몸부림치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읽은 것 같긴 한데…. 이런 소잡지의 알맹이는 거지반 비슷하다.

최근 출판 붐을 타고 있는 단행본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 '작은 이야기' '인간 관계를 열어주는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 류 (類) 의 훈훈하고 가슴 뭉클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형태는 주로 예화 (例話) 와 독자 편지. '아니, 이 세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었단 말인가 - ' 싶은, 일간지 사회면에 실릴 법한 미담이 총출동한다.

갖가지 양서에서 골라 뽑은 삶의 지혜, 동서고금을 총망라한 명언록 발췌 등도 단골 메뉴다.

하지만 감동이 범람하다 보니 감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름다운 당신' '요즘 느끼는 행복' '내겐 너무 소중한…' '그래도 희망은 있다' 등 '좋은' 얘기라도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극소수 잡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10~60대까지 독자층을 넓게 잡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보다는 무난한 내용으로 안전하게 가려 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 하는 생각도 든다.

“읽고 나서 별로 남는게 없어 아쉽다.

푸근하고 편안한 얘기들이 현실을 이해하는데 궁극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의문스럽다” 는 볼멘 소리도 들려온다. “깊이 있고 어려운 내용을 다루진 않는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가벼운 교양잡지도 필요한 것 아닌가.

어차피 제도권 교육에서 독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읽을 거리' 를 제공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는게 이번달 창간호를 낸 '좋은 느낌 좋은 만남' 임석래 편집주간의 항변. 하지만 일상의 소중한 사연들이 '값싼 감동' 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 미니잡지들은 좀더 고민하고 분주해져야할 것 같다.

그런 잡지가 또 수명도 오래 가지 않을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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