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궁하면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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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본선 리그
[제3보 (39~51)]
黑.안조영 8단 白.이세돌 9단

투자가 많은 쪽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세상의 상식이자 바둑의 원칙이다. 그러나 바둑은 흑과 백이 두는 것이고 서로 입장이 정반대인 나와 남이 존재한다. 한수 놓일 때마다 상황이 변한다. 요는 그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문제다.

안조영8단은 전보에서 흑▲에 두고 백△를 허용했다. 눈앞의 현찰인 귀를 내주고 상변에 투자를 집중한 것이다.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해놓고 39로 공격하지 않는다면 바둑도 아니다. 안8단의 입장에서 이 판단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백을 쥔 이세돌9단의 입장은 어떤가. 백의 투자는 중앙을 경계로 흑과 반대편인 왼쪽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아사 직전의 상변을 모른 체하고 좌변으로 직행한(백40) 것은 지극히 옳다. 그런데 39와 40이 놓인 이 대목에서도 계속 처음의 '원칙'만 고집한다면 어찌 될까. 흑은 계속 상변을 두고 백은 좌변만 둬야 할 것이다.

세상사에선 이런 고집불통도 흔하게 목격되곤 하지만 적어도 바둑판에선 이렇게 악을 쓰듯 버티는 행위는 안 통한다. 어느 한쪽의 바보짓임이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설명은 간단하다. 상변 백◎ 두점보다 좌변 흑⊙ 네점이 더 크기 때문에 손해가 큰 흑이 먼저 타협하는 게 순리다. 안8단이 41 쪽으로 기수를 돌린 사연이다. 47로 끊었을 때도 원칙은 '끊은 쪽을 잡아라'이며, 그 결과가 '참고도'다. 이세돌은 맛있는 먹이인 A의 약점을 발견하고 원칙을 접는다. 당장은 궁한 모습이지만 웅크린 채 A로 돌파하는 강수의 타이밍을 노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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