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회장 "통안증권 회수"요구…한국은행 "말도 안되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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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종현 (崔鍾賢) SK그룹 회장이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30대그룹 총수들간의 오찬간담회에서 '통화안정증권 회수론' 을 들고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崔회장의 주장은 "10년전 무역흑자시대에 국내통화량 조절을 위해 통안증권을 매각해 기업돈을 빨아갔는데 이제는 적자를 보고 있으니 그 돈을 기업에 돌려달라" 는 것. 그러나 통안증권을 발행하는 한국은행은 이같은 주장이 통안증권의 성격과 운용방식을 전혀 모르고 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우선 통안증권을 기업에 떠안겨 기업자금을 흡수했다는 것부터가 실상과 다르다.

통안증권은 한은이 통화량 조절을 위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특별유통증권이다.

따라서 통안증권을 발행해 기업에 직접 떠안겼다는 주장은 출발부터 틀렸다는 얘기다.

또 국제수지 흑자기에 기업자금을 빨아들였다는 지적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80년대 후반 대규모 경상흑자가 발생했을 때 한은이 거액의 통안증권을 발행해 늘어난 통화량을 흡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당시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원화로 바꿔 기업자금으로 사용했고 실제 통화흡수로 영향을 받은 쪽은 중소 내수기업과 가계자금이라는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의 박철 (朴哲) 자금부장은 "금리가 자유화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기업대출금리가 시장실세금리보다 낮아 대기업들이 굳이 은행대출을 갚으려 하지 않았다" 고 지적했다.

崔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통안증권으로 흡수한 돈을 푸는 것은 본원통화를 늘리는 것과 다르다" 며 한걸음 더 나갔다.

그러나 통안증권의 환수는 본원통화의 증발로 그대로 연결되고 더구나 본원통화의 증가는 IMF와의 합의에 따라 엄격하게 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같은 통안증권 논쟁의 와중에 金당선자까지 나서 崔회장의 주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준 대목이다.

물론 대통령이 통화관리의 세세한 내용까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고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그렇지않아도 생각할 일이 많은 당선자에게 얼핏 듣기에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된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경우 그로인한 혼란과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실제로 한은은 통안증권문제가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보고서를 만들어 金당선자에게 해명하는등 부산을 떨었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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