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행정조직 살빼기…국민대 김병준 교수, 지역 특성 살릴 행정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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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방 행정조직은 상당부분 잘못된 논리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재단돼 왔다.

시 (市) 나 광역시가 되는 것을 '승격' 이라 규정 지워 놓고선 이를 마치 큰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사해 온 게 대표적인 예다.

행정의 경쟁력 강화 같은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지역 정서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배려와 공무원의 승진기회 확대 등이 실질적 이유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의 결과로 우리의 지방 행정조직은 많은 문제점을 안게 됐다.

계층이 너무 많아 불필요한 정치비용과 행정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행정구역 또한 정보화.세계화 등의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세방화 (世方化.glocalization)' 시대에 있어 어떤 형태로든 개편이 절실한 상황이다.

개편이 이루어질 경우 우선 행정구역 문제에 있어 생활권과의 일치 등과 같은 고전적 기준 외에 정보화와 세계 경제질서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지방의 역할 변화와 기능이양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흔히 얘기하는 '생활 자치' 의 틀을 넘어 '산업경제 자치' 로까지 발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재단되거나 고전적 기준만이 적용될 경우 우리는 다시 한번 시대착오적 체계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불필요한 계층 축소를 통한 행정과정의 '거품' 제거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행정구를 두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던 시 (市)가 광역시로 승격됐다고 해서 무조건 선출직으로 구성되는 자치구를 두는 것이 타당한지, 또 지역특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읍.면.동을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엄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만큼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최근 겪고 있는 IMF 한파가 여러 이해관계 세력의 저항을 막는 벽을 형성함으로써 이런 개혁과 개편을 성사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모두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김병준 교수 〈국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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