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실직시대 '함께 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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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 3, 4세 된 아이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강도행각을 했던 젊은 부부가 경찰에 체포되는 TV보도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을 승용차에 놓아둔 채 유유히 강도짓을 한 '대담성' 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모두 다섯식구가 좁은 자동차안에서 숙식 (宿食) 을 해결해왔다는 점이다.

'나랏님도 못 구하는 게 가난' 이란 말도 있지만 어쨌든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온 젊은 부부가 한없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어른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경찰서 안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운명' 이 더이상 '별난 일'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마침 노사정 (勞使政) 대타협으로 정리해고제 도입이 기정사실화된 터다.

'역사적 사건' '우리민족 정신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 등등 대타협에 대한 거창한 평가와는 별개로 많은 근로자.가장 (家長) 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 더이상 '별난 일' 이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정부와 관계기관의 전망에 따르면 올 한해 우리나라 실업자수가 2백만명을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이중 상당수는 가장이다.

가장 한사람이 가족전체의 생계를 도맡다시피하고 있는 우리의 가계 (家計) 구조에서 가장의 실직은 바로 가족 생존권의 문제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새정부는 실업과 고용안정을 위해 5조원의 재원을 확충해 실업급여 지급률을 높이고 기간을 늘리는 등 실업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수혈로 당장은 넘어간다해도 실업과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느끼는 빈곤과 상실감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같다.

위의 부부의 경우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직의 대안을 찾지 못한 이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거리로 뛰쳐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새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것 못지않게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고통을 견뎌나가겠다는 국민적 합의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IMF체제라는 국가적 위기가 공동체의식을 되찾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언제부턴가 '다같이 함께' 라는 공동체의식이 해이해지고 가족이기주의.집단이기주의가 빚어내는 '공해' 가 만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역사적인 노사정 대타협도 국민적 공동체 의식 함양없인 한장의 종이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정민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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