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브즈맨칼럼]빌 게이츠가 봉변당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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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사의 대전환기에는 으레 길잡이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세계적인 시야에서 볼 때 그런 인물로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 그리고 앨빈 토플러 등이 손꼽히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매스컴이 이들의 동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당연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것은 결코 뉴스의 형식화나 구색맞추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도리어 형식보다는 내용이 알차야 하고, 구색맞추기가 아닌 진정한 메시지의 전달이 있어야만 비로소 당연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간과돼서는 안될 것 같다.

내가 이 점을 구태여 지적하는 까닭은 지난주 유수한 신문들이 보도한 게이츠나 토플러 관련기사가 너무나 형해화 (形骸化) 한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게이츠 관련기사를 보면 거의 모든 신문이 '크림파이' 를 뒤집어쓴 몰골 사나운 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크게 실은 바 있다.

물론 그런 사진이란 사진만으로도 뉴스가치가 있고 화젯거리가 되는 것이므로 크게 싣는 것은 올바른 편집태도라고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진과 관련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준 신문이 하나도 없었다는 데 있다 겨우 사진설명으로 '미국의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이 4일 벨기에 브뤼셀의 한 국제회의에 참석하려고 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크림파이 공격을 받아 파이를 뒤집어썼다' 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기사란 사진중심의 외신기사이기 때문에 어떤 한계가 있게 마련이라고 변명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각 신문의 기사화한 사진설명을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일부 신문의 경우는 사진설명에 덧붙여 '경찰은 현장에서 파이를 던진 2명을 붙잡아 조사중인데 유명인사들이 봉변당하는 장면을 사진 찍어 돈을 버는 사람들의 장난으로 추정된다' 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덧붙임은 매우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것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하나의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 요소가 간과되거나 무시돼서는 신문의 질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절실하다는 점을 이번 빌 게이츠의 사진기사가 새삼스럽게 제기해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설령 사진과 관련된 설명이 그런대로 충족됐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것으로 게이츠 관련기사가 완벽하게 커버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참석한 국제회의의 성격이나 내용, 그리고 거기에 참석한 정계나 재계인사의 면면들이 밝혀지고, 나아가 게이츠가 한 역할이 보도되지 않는 한 독자의 궁금증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토플러 관련기사에서도 역시 그런 소홀함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국내뉴스의 비중으로 볼 때 토플러가 김대중 (金大中) 차기대통령에게 자문역을 자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거기에 대한 답신을 띄웠다는 것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지난해 9월 방한했던 토플러가 金차기대통령에게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는데 그것을 제대로 커버한 신문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제3물결과 정보화사회의 전개를 정확하게 예견한 토플러의 위상으로 볼 때 그가 새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참뜻이 과연 무엇인지는 결코 가볍게 다뤄질 일이 아님을 강조해두고 싶다.

역사를 예견 또는 예측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소로스도 결코 가볍게 보아넘길 인물이 아니다.

소로스는 단순히 예측과 예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세계경제, 특히 세계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존재라고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중시해야 할 줄 안다.

흔히 역사의 발전법칙으로는 순환론적인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반복된다는 학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역사의 변증법 (辨證法) 적인 발전론이 최근까지 기세를 올렸었다.

그런데 소로스는 그런 학설이나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스승 칼 포퍼가 주장한 '모든 것은 가설 (假設).추측 (推測)에 지나지 않는다' 는 것을 철저하게 신봉한다는 이야기다.

소로스는 투자가이면서도 철학자 또는 역사학자를 자임 (自任) 하고 있거니와 그가 한 말 가운데 '애덤 스미스도 J M 케인스도 영락없는 어용학자 (御用學者)에 불과했다' 는 지적과 '나는 주가 (株價) 를 움직인다.

주가는 가치 (價値) 를 바꾼다.

나는 역사학자의 가치관을 바꿔버리겠다' 고 한 말은 나의 뇌리 (腦裡)에 생생하게 꽂혀 있다.

그런 소로스가 우리나라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쩌면 국제통화기금 (IMF) 의 그것과 비교해도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매스컴은 그것을 제대로 기사화하는데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소로스가 방한했을 때 거의 모든 매스컴이 金차기대통령과의 만남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그것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그나마 중앙일보가 미 뉴욕에서 소로스를 단독회견해 그의 생각을 충실하게 독자들에게 알린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새로운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경제시스템이 지금까지의 모델을 대체해야 한다' 는 소로스의 한국 진단에 섬뜩함을 새삼 느낀다.

이규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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