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안정대책…금리경쟁 발묶고 기업엔 급전숨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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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8일 내놓은 '금융시장 안정대책' 은 10개 종합금융사 폐쇄로 인한 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고 최근 금융기관간 벌어지고 있는 고금리경쟁에 제동을 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종금사 폐쇄로 인한 기업 자금난이 '발등에 떨어진 불' 이다.

종금사가 금융기관 부실의 대표격으로 몰리긴 했지만 그동안 기업들엔 기업어음 (CP) 할인을 통해 90조원에 가까운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창구역할을 해온게 사실이다.

이런 종금사가 10개씩이나 문을 닫자 당장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길이 막혀버렸다.

1차 경영평가에서 살아남은 종금사도 2차 평가라는 관문을 또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CP할인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말부터 올 1월말 사이 한달동안 CP할인 잔액은 7조9천8백28억원이나 줄었다.

정부가 CP시장을 서둘러 전면 개방하고 은행.증권.투자신탁사에 CP할인 업무를 확대 허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종금사의 폐쇄로 인한 CP할인 업무 공백을 다른 금융기관의 참여를 통해 메워보자는 의도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기업 자금난이 얼마나 풀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은행.증권 등이 CP할인 업무에 익숙지 않아 신용도가 높은 기업의 CP 외에는 취급하려 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증권사는 종금사에 비해 기업 신용평가 능력이 떨어져 중소기업 CP 등은 아예 할인을 안해주고 있다는 것. CP시장 개방도 단기적으론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주식.채권 등 수익률이나 위험도로 볼 때 CP보다 나은게 많은데 외국인들이 국내 은행.증권사도 기피하는 CP를 굳이 사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은 앞으로도 자금난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기업의 회사채 발행 만기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 것은 대기업 금리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채 만기를 3년이상으로 묶어 놓으니 대기업들이 현재의 고금리를 3년동안 부담해야 해 회사채 발행보다는 CP발행에 주력해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대기업의 1년짜리 회사채 발행이 늘면 중소기업 등의 CP발행 여건도 다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신종적립신탁을 없애고 투신사의 단기공사채형 펀드에 저리 (低利) 채권.어음 등을 강제 편입토록 한 것은 고금리 경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은행.투신사 등이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단기 금융상품의 수신금리를 경쟁적으로 높이고 이 금리를 맞춰주자니 다시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에 자금을 운용, 돈이 금융권 안에서 돌면서 금리만 높여온 게 사실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행정규제로 단기 금융상품의 수신금리를 끌어내린 것이다.

그러나 신종적립신탁을 정부가 허용한게 지난해 11월말인데 불과 3개월이 채 안돼 이를 다시 폐지키로 한 것은 근시안 (近視眼) 적 정책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또 돈이란 어차피 높은 금리를 쫓아다니게 마련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고수익 상품의 금리를 낮출 경우 또 다른 왜곡이 일어나 금융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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