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회관을 살려주세요" 박대통령 둘째딸 눈물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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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해같이 맑고 꽃처럼 아름답게 슬기를 키우는 나라' - . 서울광진구능동 어린이회관 입구 입석에는 고 (故)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의 유지 (遺志)가 새겨져 있다.

74년 '노는 것보다 어린이가 먼저' 라는 절대권력자의 뜻에 따라 골프장을 외곽으로 이전시키고 터를 잡은 '어린이들의 꿈동산' . '최고만 쓰라' 는 당시 朴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3만평 부지에 웅장한 3층짜리 과학관.문화관 2개 동과 놀이시설 등이 들어서 동양 최대의 어린이 공간으로 자리잡았던 곳이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회관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웅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건물 외벽과 기둥 곳곳에 균열이 생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지붕에서 낡은 기와가 부서져내리고 있다.

언제 안전사고가 터질지 모를 정도다.

'과학입국의 동량을 키워내자' 며 과학자들이 동원되고 대기업들이 앞다퉈 참여해 볼거리로 가득찼던 전시관의 전시물은 절반 이상이 시험작동조차 안되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처럼 어린이회관이 '폐허화' 되다시피 한 것은 재단의 극심한 운영난 때문. 근혜 (槿惠.46).서영 (書永.44) 두 딸이 회관.놀이기구 입장료와 주차장.수영장 임대수입 등으로 초기에는 근근이 살림을 꾸려왔지만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운영난에 부닥쳤다.

주 수입원이었던 아동잡지 '어깨동무' '꿈나라' 가 저질 일본만화 번역물 등에 밀려 87년 휴간됐고, '朴대통령의 은덕을 입었다' 며 도움을 주던 사업가.독지가들도 슬그머니 발길을 끊었다.

이 때문에 낡아빠진 보일러를 교체하지 못해 10년째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3월에는 8년째 이사장직을 맡고있는 서영씨가 자신의 아파트를 저당해 직원 월급을 주기도 했다.

회관측이 안고 있는 은행빚만도 30억원. 극심한 운영난을 견디지 못한 서영씨는 6일 고심끝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 등에게 지원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기로 했다.

“부친 때문에 여러 고초를 겪었던 분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망설였으나 어린이를 사랑했던 고인 (故人) 께서도 허락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권력무상과 함께 빛이 바래가는 부모의 유지를 지키려는 안간힘이 담겨 있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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