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에 상처 입은 국세청 “허튼짓할 만큼 우리 조직이 엉성하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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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같은 압수수색이 지나갔지만 7일 국세청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팽팽했다. 서울 수송동 국세청 본청에는 평소보다 두세 배 많은 보안 요원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압수수색이 있었던 10층의 경비는 더 강화됐다.

6일 오후 10시 서울청 별관(효제동)에서 근무하는 조사4국의 주요 간부가 수송동 본청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국세청은 ‘검찰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최대한 협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불편한 마음을 감추진 못했다. 한 관계자는 “박연차 사건의 출발이 세무조사인데 그 조사를 부정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검찰 내부 조사는 왜 안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자존심에도 상처가 났다. 압수수색의 대상이 국세청에서 내로라하는 조사 요원이 모여 특수 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조사를 하면서 허튼짓을 할 만큼 우리 조직이 엉성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소환이다. 불명예 퇴진에 이어 세 명의 청장이 잇따라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월 그림 로비 사건이 터졌을 때도 국세청은 공개적인 검찰 수사만은 막으려고 사방으로 뛰었다.

내부 전망은 둘로 나뉜다. 당시 조사가 한 전 청장과 서울청 조사4국의 직보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에 조사를 둘러싼 내·외부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한 전 청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천신일씨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하는 마당에 (소환을) 피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고위 관계자는 “6일 압수수색과 당시 조사를 담당한 실무진 면담을 통해 검찰이 궁금해하던 부분이 다 풀렸다고 들었다”며 “추가로 실무진을 부르거나 청장을 소환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적인 문제는 세정 공백과 세수 감소다. 이번에도 국세청이 문제가 되면 조세 저항이 커질 수 있다. 청와대가 4개월 넘게 신임 청장을 정하지 못하는 데는 ‘이번에도 잘못 뽑으면 큰일난다’는 위기 의식이 있다. 올해는 불황으로 인해 세수 부족이 걱정되는 해다.

특히 이달은 국세청 업무가 폭주하는 시기다. 종합소득세 신고·납부, 유가환급금 신청, 근로장려금(EITC) 신청이 겹쳤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세무서에 흔들림 없이 업무에 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세무서 직원은 “일이야 해야 하지만 일할 맛이 나겠느냐”고 되물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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