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줄인 가정]건전한 소비지출, 어려운 경제에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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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부 金모 (39.서울서초구잠원동) 씨는 이달부터 초등학생.유치원생인 두 아이에게 먹이던 우유 2통을 끊었다.

반찬도 세가지 이하로 제한했다.

불황이긴 해도 변호사인 남편 소득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기름값이 대폭 올랐어도 두 대인 자가용을 처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물가가 올랐으니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뭔가 동참해야 할 것 같아 찾은 방법이 식품비 절약이었던 것. 맞벌이 부부인 이민정 (李旼廷.30.여.서울서대문구연희동) 씨는 지난 백화점 세일 때 정장을 사려다 포기하고 말았다.

세일 때 옷을 사려고 별렀던 터라 구매여유는 있었지만 남편이 “남들은 반찬값도 아낀다더라” 며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다.

주부 최인영 (崔仁榮.29.서울송파구잠실동) 씨는 고장난 오디오를 새로 교체할 것인가로 남편과 며칠째 승강이 중. 세살 난 딸의 정서교육상 오디오가 필요하다는 점은 서로 동의하지만 30만원은 넘게 줘야하는 오디오를 요즘같은 때 사서는 안된다는 것이 崔씨의 입장.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들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머리도 짧게 깎인다는 이웃 주부들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여유가 있는데도 쓰지 않는다면 금괴를 장롱 속에 숨겨놓고 있는 이들과 다를 바 있느냐” 며 “오디오장사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고 崔씨를 공격하고 있다.

'무턱대고 졸라매기식' 가계운영은 사회 전반의 합리적 소비지출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20일간의 세일을 끝낸 G백화점의 경우 세일기간이 지난해보다 10일이나 늘어났지만 전체 매출은 오히려 20%이상 감소했다.

소비자를 위한 시민의 모임 김애경 (37.여) 부장은 “IMF시대로 가계의 실질소득이 30% 이상 줄어 생필품까지 급격히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면서 “수입의류 등 거품소비를 줄여야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소비해주어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고 말한다.

각 가정의 생활수준에 따른 건전한 소비지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내수산업을 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어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소비자보호원 이강현 (李康賢.44) 생활경제국장도 “경조사.사교육비 절약은 우선돼야겠지만 의류.식품.공산품 등의 기초 소비마저 죄악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 지적했다.

김태진·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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