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만 남은 노사정 대타협]박태준총재, 양노총 오가며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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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사정 (勞使政) 타결이 임박한 가운데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가 5일 서울삼선동 민주노총 (위원장직무대행 裵錫範)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 3일 한국노총에서의 솔직한 대화가 협상분위기 반전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판단에 따라 협상막바지에 더욱 강경그룹인 민주노총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朴총재의 '노동계 순회' 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권유로 시작된 것이다.

朴총재는 자리에 앉자마자 배석범위원장대행을 향해 “여러분의 협조를 고개숙여 부탁드린다” 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裵대행은 다소 당황하며 “몸둘 바를 모르겠다” 고 답했다.

그러나 막상 대화에 들어가자 민주노총의 요구와 발언수위는 한국노총보다 훨씬 높았다.

“총재께서 재벌개혁의 칼잡이 역할을 해달라” (裵대행) 는 주문에 朴총재는 “내가 칼을 들 수도 없고 또 그래서 되는 일도 아니다” 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노동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는 기업엔 경을 치겠다” 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근절의지를 역설했다.

다음은 대화요지.

▶朴총재 = 현정부의 국제신용이 하도 추락해 취임 전인데도 우리가 여당노릇을 하고 있다.

▶裵대행 = 정리해고를 받으라고 하는데 노동자의 목을 마음놓고 치겠다는 것 아닌가.

현장에선 그런 일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정리해고는 정서적인 문제다.

우리에게 나름의 명분과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줘야 하지 않는가.

우리도 끝까지 대결로 나아가야 할지 사실 고민스럽다.

▶朴총재 = 사용자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배석한 李肯珪국회환경노동위원장을 향해) 마구잡이식 해고가 있으면 안된다.

조사해 보라. IMF와의 약속을 비교적 잘 이행해 왔다.

15일까지 수정협상을 하고 17일엔 IMF이사회가 있다.

이사회 결정이 우리의 태도 때문에 늦어지면 나라가 또 곤경에 빠질 수 있다.

▶허영구 (許榮九) 부위원장 = 노동악법과 제도적인 모순으로 구속된 노동자가 아직도 많다.

사면복권 등 대통합조치를 취해야 한다.

재벌총수들의 가시적 조치가 미흡하다.

▶朴총재 = 동의한다.

당선자도 그렇지만 나도 노동자 편이다.

(배석자를 향해) 구속자 실태를 알아보라.

▶裵대행 = 재벌총수들의 사재출연은 빼앗자는게 아니라 자기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실업기금 등에 쓰라는 것이다.

▶朴총재 = 우리도 내용적으론 소리나지 않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위기극복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하자.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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