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청 '아버지에게 편지쓰기'…174통 모아 가정에 발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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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빠가 얼마전 직장을 그만뒀을 때 가장 두려워했던 건 아빠가 용기를 잃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기운을 내시고 자식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서울 잠신고2 허미자) “5년전에 부도난 회사를 이제 거의 다 살리셨는데…. 요즘엔 평소 아버지 성격으로는 꺼리실 주방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 방산중2 이정석) “오늘부터 군것질은 5백원까지만 할게. 아빠는 대신 술.담배 줄이고 더 열심히 일해 주세요.” (서울 삼전초등4 김은지) 가장의 아픔은 곧 가족 모두의 아픔. 귀염둥이 자녀들이 최근 실직.감봉 등으로 고개를 떨군 아버지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식들이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시지 마라' 며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청은 최근 '우리 아버지께 편지 쓰기' 행사를 벌여 초.중.고교 자녀들이 보낸 1백74통의 편지를 모아 각 가정에 발송했다.

IMF를 IWF로 적어낼 만큼 철없는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아빠' 대신 '아버지' 라 호칭하며 제법 어른스럽게 글을 쓴 고등학생까지 형식은 제각각이었지만 내용은 한결같이 고독한 아빠의 괴로움을 함께 하겠다는 애틋한 가족애를 담고 있다.

“아빠, 힘내세요. 아빠가 항상 저희 곁에 있어주셨던 것처럼 이제부턴 제가 아빠의 조그마한 버팀목이 돼 드릴게요.” 둘째딸 은수 (銀洙.18.영동여고2) 양에게서 편지를 받은 ㈜위너스 김춘웅 (金春雄.56.서울송파구삼전동) 부사장은 “회사가 부도나 하루하루가 힘든 게 사실이지만 딸 아이의 편지를 보고나니 용기가 솟는다.

회사에 돌아가 동료들에게도 보여주며 자랑할 생각” 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김숙정 (金淑貞.48.여) 송파구청 가정복지과장은 “실직당한 사실을 집에 숨기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가장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다.

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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