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정기권 문제 많아 졸속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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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오는 15일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지하철 월 정기권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전에 준비했던 것이 아니라 교통체계 개편 이후 요금인상과 시스템 고장에 따라 여론이 악화하자 졸속으로 내놨기 때문이다.

일단 철도청의 반대로 서울시내 지하철역 중 철도청 관할인 31개역(남영~온수, 용산~도봉산)에서는 정기권을 사용할 수 없다. 서울 시계를 벗어난 경기도권과 경인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정기권은 또한 본인 식별이 안 돼 한 장으로 가족이나 친구 등이 함께 사용해도 이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무임 혹은 부정승차 승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당장 급한데로 마그네틱 카드 형태로 정기권을 발행한 후 나중에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카드로 전환할 방침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급조된 '지하철 정기권 발행'이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월 3만5200원으로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는 정기권으로 인해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핵심인 무료 환승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지하철 정기권 사용자들은 버스와 지하철간 환승 할인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지하철 운영적자가 늘어나 안전시설과 서비스 개선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정기권 발행으로 도시철도공사와 지하철공사의 적자폭이 커질 뿐 아니라, 신교통카드인 'T-머니' 사용자들이 정기권으로 넘어올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주이용객이라면 'T-머니'보다는 정기권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정기권은 지난 89년 지하철 적자보전을 이유로 폐지됐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지난 4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지하철 정기권 부활'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통체계 개편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7일 오전에만 2000여건의 관련 글이 올라왔다.

'회사원'이라는 아이디의 시민은 정기권 도입에 대해 "지하철 정기권으로는 버스 환승할 수 없다는데, 그럼 교통비 두 배씩 내고 날마다 어떻게 출근해요? 무턱대고 정기권만 발행하면 어쩌겠다는 겁니까"라고 지적했다.

이 시장이 6일 대학총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통체계 개편의 혼란을 시민의 무관심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비난 글이 올라왔다.

"우리가 무슨 마루타인가? 시민이 준비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하는 건 서울시 책임자로서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 설사 시민의 무관심으로 혼란이 야기됐다고 해도 그럼 무관심을 방치한 서울시는 책임이 없는지요."(마루타)

경기도민들 역시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시민만 고려해서 교통요금 올려놔서 예전보다 교통비가 2배 가까이 더 나온다"(경기도민), "근 10년을 서울로 통학, 통근했지만 요즘같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홧병이 나면 그것도 나의 잘못, 회사를 서울로 다녀야 하는 경기도 사람이기 때문일거고…"(안양시민) 등의 내용이 올라왔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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