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신세기' 개인예금 반환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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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업무정지중인 신세기투자신탁 고객들에게 자산을 돌려주는 문제가 아직껏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신세기투신에 돈이 묶인 고객들이 항의소동을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들어간 가운데 이 문제는 자칫 투신사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 대량 환매사태 등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핵폭탄' 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일부 투신사에서는 최근 들어 자금이 다른 금융권으로 이탈하는 조짐이 나타나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12월17일 정부가 신세기에 대해 경영난을 이유로 업무정지조치를 내림에 따라 2조8천억원에 달하는 고객들의 자산이 공중에 붕 떠버린 데서 비롯됐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도산때 지급을 보장해 주는 예금자보호대상에서 투신사의 신탁자산을 제외한 데다 신세기투신도 혼자 힘으로는 돈을 내주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세기는 과거 신탁자산을 담보로 급전 (일명 브리지 론) 을 끌어다 써 6천3백억원의 손실을 끼친 상태다.

만약 고객들이 현재 시세대로 자산을 돌려받을 경우 원금도 못찾는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하지만 투신사들을 감독할 책임을 지고 있는 재정경제원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에서 직접지원은 곤란하다며 간접지원방식을 내세우는 데다 정권이양이라는 상황까지 겹쳐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세기의 신탁자산을 인수해 고객 돈을 대신 지급하기로 한 한국투신은 더 답답하다.

경영진은 정부의 인수명령을 받아들여 덜컥 고객자산 반환일정까지 발표했으나 지분이 16%인 노조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기 자산을 떠안으면 회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노조의 주장에 밀려 한투는 결국 지난달 31일로 잡았던 고객자산 반환을 무기연기해 놓은 상태다.

현재 투신사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만들어 한투를 돕는 방식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이마저 당사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려 여의치 않다.

한국투신.대한투신 등 전국 7개 투신사들은 최근 업무정지를 당한 투신사의 고객보호를 위해 '투자신탁수익자보호기금' 을 만들고 급한 대로 3천억원을 조성해 신탁자산 반환에 사용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한투노조는 "주로 유가증권인 고유자산을 처분하면 장부가를 훨씬 밑도는 데다 신탁자산에서 상당액의 부실채권이 발견됐고 반환당일의 환매에 충당할 자금 등을 감안할 때 지원규모가 최소한 1조원은 돼야 한다" 며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노조측은 가까운 시일 안에 납득할 만한 대안이 안나올 경우 정부의 신탁자산 인수명령을 취소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두 달 가까이 끌어온 신세기 문제가 자칫 원점으로 돌아갈 판이다.

더 큰 문제는 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다.

투신업계에 고객들이 맡긴 자산은 96조원에 이른다.

만약 신세기 고객들이 원리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투신시장에는 대량 환매러시 등 엄청난 파동이 우려된다.

강국수 (姜菊洙) 투자신탁협회 상무는 "투신고객들의 불안감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어 조만간 가시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업계 전체가 공멸할지 모른다" 고 우려했다.

서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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