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난]신용장 개설 왜 안되나…외국은행 인수기피에 국내은행 몸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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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은행들이 기업의 수입신용장 (L/C) 개설에 난색을 표명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국내은행이 거래하는 해외 유수은행들이 국내은행에 대한 L/C인수한도를 대폭 줄인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통상 국내은행이 수입L/C를 개설하면 해외의 유력은행을 통해 수입결제대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외국계은행들은 국내은행에 대해 일정한 한도를 두고 L/C를 인수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말 우리나라의 신용도가 추락하면서 외국은행들이 이 한도를 급격히 줄이는 바람에 L/C를 열어주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은행측의 설명이다.

L/C개설한도는 지난해 12월이후 종전의 절반이하로 줄었다고 은행실무자들은 전한다.

두번째는 외환위기로 은행들이 수입대금을 결제할 달러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통상 수입대금의 결제는 국내 수입업자가 원화로 수입대금을 결제하면 은행이 달러를 조달해 외국에 갚아주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은행 자신이 달러가 없어 외화부도에 몰린 판에 기업들의 수입대금까지 대줄 여력이 없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지난해초부터 이어진 기업의 연쇄부도 태풍속에 은행들이 수입L/C개설에 몸을 사린 측면도 있다.

수입L/C를 열어준다는 것은 은행이 기업의 수입대금 결제를 보증해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업의 도산이 줄을 잇는 마당에 섣불리 아무 기업에나 L/C를 열어줬다가 수입업체가 부도 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수입대금을 물어줘야 한다.

여기다 수입L/C의 개설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은행의 부담이 돼온 게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은행들은 기업의 수입L/C개설을 기피하게 되고 기업들은 수출상품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원자재마저 들여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특히 금액이 큰 수입L/C의 경우 더욱 개설이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뉴욕 외채협상 타결을 계기로 외환사정이 호전되면서 은행의 L/C개설 기피현상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게 외환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우선 전체적인 국가신용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한없이 줄어들기만 했던 국내은행에 대한 L/C인수한도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하나은행 외환업무부 황정태차장은 "통상 L/C한도가 대출한도보다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도네시아 외환위기의 여파가 크지 않다면 2월부터는 국내은행에 대한 L/C한도가 크게 확대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은행의 외채 만기가 속속 연장되는 가운데 주식.채권투자자금 등 외화자금의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달러부족 사태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 (IMF) 고금리 태풍속에 기업의 부도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은행들이 L/C를 열어줄 때 기업의 재무구조.경영상태를 꼼꼼히 따질 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기업별로 L/C개설여건이 더욱 차별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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