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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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朴木月.1916~78) 의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같은 시들을 보고 '북에 김소월, 남에 박목월' 이라고 정지용이 격려했다.

이 시에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처럼 늙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아닌 타고난 출생지에의 체념이 있다.

처음부터 산에 에워싸여 씨나 뿌리고 밭이나 갈다가 그믐달처럼 사위어가는 숙명을 아무 탈 없이 받아들인다.

수동 (受動) 은 자아를 어디로 떠내려보내기도 한다.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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