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은의 세상풍경]아아,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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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물무늬는 바람 반대편으로 번진다.

거드름의 시절이 수없이 익사하고 있다.

우두커니 물가에 선 아이에겐 웬 배앓이가 계속되는 걸까. 저만치는 부황 (浮黃) .그리고 얼굴을 가린 천연두. 보초는 이미 적에게 매수된 채 허수아비 걸음질이다.

부질없는 총질하며…. 경보.주의보는 이미 무기력하다.

전염병은 온 나라를 휩쓸고 말 것. 제각기 다른 속셈이 반도를 엿보고 있다.

너희들의 돌반지를 팔아 어른의 빚을 갚아야 하는 사연은 너무 애달프다.

우리의 허황한 꿈은 지금 흙바람에 휩싸여 있다.

저 젖은 북소리는 누굴 다시 부르는 거냐. 이제 몸을 추스리고 길을 가겠네. 처음은 허약한 발길이어야 한다.

비곗덩어리로 불어난 몸통으로 허기졌던 지난 날을 기억하기란 고통일 것이다.

얼마나 슬픈 살아남은 자여. 아아!

내일은 비라면, 바람이라면, 더 깊은 안개 속이라면….

그림 = 최재은〈명지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글 =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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