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실직자 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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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실업자의 폭증이 전세계의 심각한 과제로 대두하기 시작하면서 인위적인 시장경제를 대체하는 이른바 '제3부문' 이 강력한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제3부문이란 실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내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처럼 임금을 받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간접적인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비영리 공동체' 를 뜻한다.

예컨대실업자들이 공동체 서비스 조직에 참여해 병원.고아원.양로원 등에서 불우한 사람을 도와주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공동체 조직은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이런 공동체 조직은 1백40만개에 달하며, 제3부문은 국민총생산 (GNP) 의 6%와 총고용의 9%를 차지하고 있다.

공동체 조직을 통한 제3부문의 급속한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다.

대표적인 예를 라틴 아메리카에서 엿볼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신부와 수녀, 그리고 평신도들이 '기독교 기초공동체' 라 불리는 10만개 이상의 기초공동체를 설립하고 있으며, 페루에서는 역시 기독교가 자조 (自助) 및 후원활동을 병행하면서 수도 리마에만 1천5백개의 공동체 취사장을 만들어놓고 있다.

종교의기능과 역할이라면 흔히 '삶과 죽음을 포함한 궁극적 존재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며 동시에 그 진리에 비추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삶의 태도와 규범을 제시하는 것' 으로 요약된다.

말하자면 종교는 어려운 처지에 빠져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에게 정신적으로나마 구원의 안식처가 돼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는 그런 '정신적' 인 안식처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인 구원의 문제에까지 깊이 개입하고 있다.

제3부문에 대한 종교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실업대란 (失業大亂)' 으로 표현되는 요즘 우리 사회의 서글픈 분위기 속에서는 특히 종교의 구원자적 역할이 절실하게 기대된다.

지난해말 구세군 (救世軍) 대한본영 등 몇몇 교회가 실업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데 이어 불교에서도 몇몇 산사 (山寺) 들이 '실직자 위안 프로그램' '실직자 쉼터'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수련이나 참선을 통한 정신적인 위안도 필요하겠지만 제3부문과 같은 현실적인 도움도 구상해볼 만하다.

지금이야말로 종교가 가진 바 '위대한 힘' 을 발휘할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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