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수행 중 희생된 건데 … 국가가 이래서는 안 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공무를 집행한 경찰관을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 취급해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이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니지요.”

정유환 동의대 사태 경찰관 유족회장이 20년 동안 받았던 유족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정유환(50) 동의대 사태 순국 경찰관 유족회장은 “동의대 사건의 역사적 평가가 다시 이루어질 때 법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9년 5월 3일 발생한 부산 동의대 사건 때 동생 정영환(당시 27세) 경사를 잃었다.

정 회장은 3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뜻깊은 행사를 치렀다. 이날 열린 ‘동의대 사건 순국 경찰관 20주기 추도식’에는 강희락 경찰청장이 참석해 “고인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의 ‘사과’가 나온 셈이다.

대구에 사는 정 회장은 4일 기자와 만나 20년간 ‘죄인 아닌 죄인 가족’으로 살아온 생활을 털어 놓았다. 그는 “사랑하는 자식·남편을 잃은 유족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세상의 무관심 속에 한 맺힌 세월을 살았다”며 “늦었지만 경찰청장의 잘못 인정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혼이었던 동생이 숨지자 유족모임의 대표를 맡았다. 장례식을 치른 뒤 1년여 동안 부산의 법원을 오가며 재판을 참관했다. “동생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 직장을 전전하고 있다. 나머지 유족들도 여전히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정 회장은 전했다. 고 박병환(당시 29세) 경사의 어머니는 악화된 고혈압으로 병을 앓다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고 서원석(당시 23세) 수경의 부모는 교회에 다니며 슬픔을 삭이고 있다. 고 최동문(당시 35세) 경위의 부인은 부산의 한 시장에서 조그마한 의류가게를 운영하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2002년을 가장 고통스러운 한 해로 회고했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경찰을 감금·폭행하고, 석유·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경찰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게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가해자는 민주화 영웅이 됐지만 경찰은 과잉진압을 했다는 불명예를 쓰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사건 관련자들이 하나둘 사면복권됐다. “법을 집행하다 순직한 사람과 유족을 모욕한 처사”라고 정 회장은 주장했다. 정 회장은 국회에 제출된 ‘민주화운동 법률’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심을 통해 동의대 사건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는 “순직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지금까지 고통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동의대 사건=19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 학생들이 학내 입시부정 등을 이유로 시위를 하면서 경찰과 충돌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경찰이 학생들에게 감금된 전투경찰 5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건물에 뿌린 석유에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나 경찰관 7명이 사망했다. 90년 동의대생 31명은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