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차라리 그때가 편했거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한국 기업인들처럼 어렵게 장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국제 금리가 5%대인데 우리는 20%에 가깝잖아요? 그런데도 부채 비율이 400%, 500%가 넘어요. 이렇게 무모하게 대드는 사람들이 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자랑이에요. 그런 모험심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는 벌써 끝장났을 겁니다." 생전에 최종현 회장이 펼친 지론인데 어느 자리에서 듣기도 하고 어디서 읽은 것도 같다.

*** 돈이 하품해도 투자는 안해

통화를 늘리고 금리를 내려 기업 부담을 줄여라. 그게 최 회장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좀 다르다. 금리 불문.부채 불문.위험 불문의 왕성한 투자욕은 고도 성장에 일등공신 노릇을 했으나 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려우니 철지난 그 지혜를 다시 빌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시장 금리가 4%대로 낮아지고-실질 금리는 0에 가깝고-재벌 기업의 부채 비율도 정부의 유도로 200%대로 떨어졌다. 바라던 멍석이 깔렸으나 춤추는 사람이 없다. 돈이 은행에서 하품하는데도 빌리려는 기업이 없다. 대체 이유가 뭐야? 그게 내 의문이다.

애덤 스미스 이래 투자 행위는 '구조'의 산물이었다. 자본이 있고, 기술이 있고, 노동력이 있으면 투자는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런 성장 방식을 어느 학자는 '근육 훈련'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대해 케인스는 '심리'를 내세웠다. 금리가 어떻고, 자본이 어떻고 따위의 구조적 제약 못지않게 투자가의 심리적 선호가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우격다짐의 시대는 가고 상대의 소매를 잡아끄는 투자 삐끼(!) 시대가 도래한 셈인가.

돈이 남아도는데도 투자를 피한다고? 구조는 이상이 없는데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투자 심리를 지배하는 요소는 먼저 수익성, 즉 경제적 계산이다. 그리고 그것을 장기적으로 담보할 미래에 대한 전망, 즉 전략적 계산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 전략 수립에 필수적으로 고려할 요소가 정책과 정치이며, 그 과제의 수행 주체는 정부와 정권일 것이다. 현재의 '참여 정부'아래에서 정책은 정치의 투기장이 되고, 정부의 고유 임무마저 정권의 강한 개성에 실종된 느낌이다. 요컨대 투자 기피 심리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권한테 있는 것이다.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형편에 기업의 정권 길들이기는 언감생심, 턱도 없는 일이고, 반면 기업에 대한 정권의 꽁한 시선은 이리저리 느껴진다. 그래서 말인데 투자 부진을 정권은 기업의 사보타주로 여기고, 기업 역시 정권과의 뚝심 경쟁으로 생각한다면 참말로 이렇게 딱한 일이 없다. 일례로 위기 논란을 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과장된 위기가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위기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도 "현재는 위기가 아닌 불경기"라면서 단기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옳은 말씀들이나 그 레토릭이 씁쓸하다. 불경기와 위기를 무슨 미들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 나누듯이 나눌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것이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충성 테스트가 되어서는 더욱더 큰 일이다. 위기를 거론하는 것이 개혁의 뒷다리를 잡으려는 소행이 아니고, 그들도 불경기를 걱정하는 사람만큼이나 나라 경제를 생각한다. 내가 타는 지하철만 해도 근자에 차내 광고가 부쩍 줄고, 역내 광고판도 빈 것이 숱하다. 내가 가끔 가는 할인 매장에도 쉬는 계산대가 늘고 있다. 위기냐 과장된 위기냐 하는 공방보다 광고판을 채우고 계산대를 열도록 정권의 신뢰를 심는 일이 시급하다.

*** 위기론에 '개혁 발목잡기' 질책

사람을 닮았는지 경제도 일어서기는 어려우나 주저앉기는 쉽다. 1992년 거품이 꺼질 때 호황이 지루하던(?) 일본 경제는 이 참에 호황 후유증을 고쳐보자는 생각으로 잠시 손을 놓았다. '잃어버린 10년' 불황은 이렇게 시작됐고, 순간의 방심이 빚은 결과는 끔찍한 것이었다. 불경기 변호로 신발끈 조일 기회를 놓치고, 위기 과장에 대한 질책으로 다시 뛰려는 의욕이 꺾인다면 우리 경제도 10년 골병쯤은 문제가 아니리라. 앞만 보고 뛰던 그때가 차라리 편했거니….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