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출판계, 칸막이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지금 같은 불황에는 차라리 책을 내지 않는 게 지혜라고들 한다.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와 '5000원으로 손님상 차리기'가 많이 읽히는 세상이고 보면 독자들의 주머니가 얇아질 대로 얇아진 게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책까지 멀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출판계의 가장 큰 불만은 20대가 독자층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인터넷 교보문고의 분석에 따르면 몇년 전부터 꾸준히 팔리고 있는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경우 20대 독자가 각각 45%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출판사의 매출을 봐도 좀 힘겹기는 해도 다른 업종에 비해 특히 심각한 불황은 아니다. 올 상반기에도 성장을 누리고 있는 출판사는 많다. 넥서스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매출이 30% 가량 늘어났다. '…30분'시리즈가 바쁘게 돌아가는 독자들의 시간감각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10월 위기설'이니 하는 불길한 전망이 나올까. 많은 출판사가 업계의 구도 자체를 흔들고 있는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행본, 교재 및 참고서, 학습지 시장으로 나뉘는 우리 출판업계의 총 규모는 약 8조원. 지금 불황을 강하게 체감하는 쪽은 단행본 중에서도 인문교양과 소설류를 내는 출판사들이다.

업계에 충격으로 와닿는 요소는 많다. 우선 독자들의 취향이 실용 쪽으로 흐르고, 386세대 부모들이 자녀의 책을 선택해주는 기준이 깐깐해졌다는 사실을 꼽아야 한다. 그리고 제7차 교과과정의 도입과 EBS의 수능방송 강화도 큰 변수다. 그 결과 단행본 시장 안에서는 경제 경영과 실용서 쪽으로 중심 이동이 이뤄지고 있고, 전체 출판 시장 안에서는 학습지에 주력하던 출판사들이 영역 간 벽을 허물며 단행본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이 올 초 단행본 시장에 3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 예다.

이처럼 학습지 전문 출판사는 단행본 시장까지 자기 영역으로 인식하는데 단행본 출판사들은 아직도 학습지 시장을 형성했던 독자들을 영역 밖으로 돌리고 있는 것 같다. 단행본 전문 출판사들은 수능시험이 이해 중심으로 바뀌면서 생긴 기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의 수험생들은 예컨대 모차르트의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외웠지만 요즘 수험생들은 모차르트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배운다. 그런 이야기는 단행본 출판사들이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장치를 빌려 전해야 할 몫인 것이다.

"단행본 출판사들이 그동안 쌓은 기획 능력과 저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금까지 학습지 시장을 형성했던 독자들에게도 다가가야 한다. 당연히 그때의 상품은 전통적인 학습지가 아니라 단행본과 학습지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여야 한다. 그리고 학습지니, 교재니, 단행본이니 하는 구분 자체부터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그렇게 한계를 정하고 들어가면 그 한계는 결국 기획의 한계, 시각의 한계가 되고 만다."(출판기획자 C씨)

독서가 종이책으로 이뤄지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인터넷을 통한 검색도 훌륭한 독서다. 국내에서도 조만간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무료로 4만여권의 책의 본문을 수초 안에 검색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과 디지털의 결합이 더욱 첨단화하면 작가나 저자들이 독자들과 직거래하는 시절이 온다. 그러면 전통적인 개념의 출판사는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정명진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