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총재, 대기업 개혁 총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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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벌개혁' 의 총대를 멘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 요즘들어 말수가 부쩍 줄었다.

몇몇 그룹의 자체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는 등 대기업정책이 구체화하면서 미묘한 상황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까지 나온 대기업들의 구조개혁안이 '썩 마땅치 않다' 는 김대중 당선자의 인식을 총수들에게 분명히 전해야 한다.

거기에 경제에 미칠 주름을 최소화하면서 개혁을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다.

현재 金당선자가 가장 관심을 쏟는 부분은 두가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수준의 사재출연이 첫번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재벌들간의 대규모 사업교환, 이른바 빅딜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단 사재 출자 문제는 롯데와 삼성이 차례로 물꼬를 트면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빅딜은 주요 업종을 각각 경쟁력 있는 한 두개 대기업에 몽땅 몰아주는 가위 '혁명적인 조정작업' 이다.

때문에 대기업들간에 정보전.신경전.눈치전이 치열하다.

차라리 金당선자가 공식적으로 이런 저런 '지침' 을 내려줬으면 하는 심정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金당선자는 시장경제 및 자율조정 원칙을 내세워 직접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결국 위 아래의 하중이 박태준 총재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朴총재는 국회가 끝난 21일부터 대기업의 구조조정안들을 하나 하나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빅딜을 유도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개발도 구상중이라는 주변의 전언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주요 그룹회장들과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확인하는 중이다.

지난 21일 저녁엔 힐튼호텔에서 김우중 (金宇中) 회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朴총재측이 이를 극구 부인할 정도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다.

朴총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재벌개혁은 하되 자칫 기업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것. 현정부의 경제실패도 기업의욕을 살리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게 朴총재의 인식이다.

22일에도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와 비상경제대책위의 이헌재 (李憲宰) 기획단장을 불러 부작용없는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들어서는 황경로 (黃慶老) 전포철회장과 자주 만나 재벌개혁의 '소프트 랜딩' 을 협의한다.

얼마전 신격호 (辛格浩) 롯데회장의 사재헌납에 훈수를 둔 것도 그였다.

당선자의 뜻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기업의욕을 꺾지 않는 방식의 개혁이 성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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