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목재 지붕 밑 온돌 바닥 건강한 하이브리드의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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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31면

① 라운지동 입구에서 본 숙소동. 4개의 객실이 있다. 이름은 각각 ‘매’ ‘란’ ‘국’ ‘죽’이다. 각 객실의 1층에는 넓은 거실과 나무 데크로 된 테라스가 있고 2층은 방이다. ② 2000년 7월 준공 당시 연못 사진. 중앙이 라운지동이고 오른쪽은 숙소동이다. 연못에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얹어 물 위에 떠 있는 듯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못과 건물 사이를 영산홍과 돌로 마무리했다(사진① 참조). ③ 나무 기둥이 가로지른 라운지 내부. 신동연 기자, 솔토건축 제공

편안하다. 나지막하다. 고요하다. 도고 온천 지역에 위치한 교원그룹의 게스트하우스에 잘 어울리는 말들이다. 휴양을 위한 숙박시설이 이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곳은 이런 특징에 더해 깊고, 투명하고 명쾌하다. 그리고 새롭기도 하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⑨교원그룹 도고연수원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는 교원 도고 연수원의 부지 안에 가장 깊숙한 곳, 연수원보다는 두 층 정도 더 높은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연수원에서 외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게스트하우스의 앞마당에 이른다. 앞마당의 연못과 숙소동, 로비, 로비 뒤의 후정(집 뒤편의 정원), 그리고 이 집이 들어앉은 삼봉산 능선이 펼쳐져 있다. 앞마당 연못을 옆에 두고 나무 데크를 건너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로 다가선다. 발이 데크를 따라 움직여 가고 눈은 길게 늘어선 숙소동의 지붕과 라운지의 넓은 지붕을 따라간다.

이제 정면에 앞마당이 있는 라운지와 마주친다. 여기서 놀라운 투명함을 발견하게 된다. 라운지의 유리 벽면을 넘어 그 내부 공간, 또 그 너머 뒷마당, 그리고 또다시 그 뒤에 산의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게스트하우스의 투명함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유리창 너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단순한 투명함이 아니다. 가까운 경치와 먼 경치가 어우러져 있고, 넓은 지붕 면의 막힘과 투명한 라운지의 유리 공간이 어우러져 있는 깊고 여러 겹의 공간이다.

살아있는 나무처럼 천장 받치는 기둥
라운지로 들어간다. 집 밖에서 보았던 넓은 지붕이 집 안에서는 높고, 경사진 나무 천장으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로비에는 5개의 기둥이 가로지르고 있다. 각각의 기둥에서 나무 가지가 4개씩 뻗어 나가 넓은 지붕 면의 보와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부재가 가늘고 재료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거추장스럽지 않다. 이 구조재를 글루램이라고 부른다. 나무 각재를 여러 겹 접착하여 만든 가공 목재로 구조적인 성능이 뛰어나고 화재에도 잘 견딘다.

목재 단면의 치수를 2인치 단위로 하기 때문에 2×4, 2×6 등 표준화된 서구식 공업 목재다. 길고 가는 부재로 쓸 수도 있고 넓고 얇은 판으로도 쓸 수 있다. 공간을 감싸 주기도, 열어 주기도 하는 목재의 속성을 이용하여 건축가는 깊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무는 자연 재료이기 때문에 세월의 때가 집에 묻어난다. 집이 처음 지어졌을 때보다 나무 색깔이 많이 진해졌다. 나무의 또 다른 매력이다. 훌륭한 건축가가 다루었을 때 천 가지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는 재료다.

하지만 필자는 크게 안타까운 것을 발견하였다. 연못이 옛 모습과 달라져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는 터에 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연못을 만들고, 물속에 나무 말뚝들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얹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집을 만들었던 것이다. 듬성듬성 갈대들이 편안하게 바람에 늘어진 모습,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의 정취가 있었다. 앞마당의 연못은 라운지의 바닥판 밑을 지나 땅과 물의 흐름이 후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 아래 땅의 흐름까지 드러나는 게스트하우스의 백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연못가에 영산홍을 빽빽이 줄 맞추어 심었다. 애당초 조경공사가 잘못돼 연못 바닥에서 물이 계속 샜다는 이야기다. 건축가와 상의하지 않은 채 공사를 다시 한 것이다. 예전에는 연못과 집의 경계가 따로 없었다. 지금은 집 따로 연못 따로다. 건축가는 이 집이 땅과 물을 만나는 방식을 세심하게 풀었지만 그 본래 의도가 손상되어 버렸다. 이것이 특히 마음 아픈 것은 한국 현대건축에서 보기 드문 게스트하우스의 깊이감, 투명함, 그리고 명쾌함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는 기초에서부터 바닥, 수직 구조, 그리고 지붕까지 집을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가 명쾌하게 드러나는 집이었다. 땅과 만나는 방식이 지금과 같이 손상되었을 때 그것은 집의 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집 전체를 다치게 한다. 교원 게스트하우스가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으로 평가될 수 있느냐를 가늠할 만한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원 게스트하우스의 지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 현대건축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난 반세기, 가장 어려운 문제가 지붕이었다. 한국 건축의 고유한 속성이 지붕의 형태에 있다는 고정관념이 간혹 걸작을 낳기도 했지만 대부분 흉물을 생산하였다. 콘크리트가 나무인 양 경사 지붕과는 관계없는 비례와 구조, 내부 공간과는 전혀 상관없이 건물 외관의 상징성만을 위하여 한국적인 지붕이 강요되었다. 이에 반해 교원 게스트하우스의 기초, 바닥, 구조 지붕은 단지 건물의 구조일 뿐만 아니라 집이 땅과 경관을 점유하는 방식, 내·외부의 공간과 여러 시설을 배분하는 방식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한옥서 얻은 영감 살려내
게스트하우스는 나무 집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 건축, 특히 한옥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조남호는 한옥에서 영감을 얻고 많은 것을 계속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옥의 가치를 그것의 옛 속성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현대적인 속성에 두고 있다. 필자도 한옥의 건축적인 매력이 그 복합적인 성격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은 목조 건축이라 하지만 그것은 구조와 지붕에 국한된 이야기이기 일쑤다. 우리의 삶의 양식은 지붕과 함께 바닥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바닥이 온돌이냐 마루냐, 신발을 신고 다니느냐 벗고 다니느냐는 문제는 불편하고 편하고의 문제를 넘어 그 공간 속에서의 삶, 사유의 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건축에서 지붕과 바닥의 만남은 이질적인 것들의 건강한 만남인 것이다. 최근 자동차 산업에서 차용하는 ‘하이브리드’, 또는 속된 말로 ‘잡종 교배’라 할 수 있다.

조남호의 건축 역시 이러한 하이브리드의 매력이 있다. 서양의 목구조는 전통적으로 목재만을 사용하여 바닥·벽·지붕·마감 일체를 나무로 사용한다. 이것이 합리적이고 편하다. 우리나라는 온돌 바닥이 살림집에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붕을 목구조로 하더라도 바닥은 콘크리트여야 한다. 현대 목조가 표준화되고 공업화된 구법이라면 콘크리트는 대부분 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노동집약적이고 상대적으로 부정확한 구법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구법은 물론 옛것과 새것, 건축 도면과 건설 현장, 구조적인 논리와 시각적인 효과를 엮어 내는 것이 조남호의 하이브리드 건축이다. 하이브리드는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과 순혈주의의 편협함을 넘어서는 건강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조남호의 하이브리드 건축은 한국의 복잡하고 어려운 건축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과 대면하면서 더욱 힘 있고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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