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디테일은 고객과 멋지게 대화하는 방법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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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11월 재계의 화제를 불렀던 초콜릿 기념품 얘기로부터 시작됐다. 받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다 놀랐다는 선물. 현대카드 모양의 종이에 싼 벨기에산 수제 초콜릿이 미니멀한 박스에 담긴 것이었다.

>> 초콜릿을 보고 놀랐다.
“내 아이디어가 아니고 외국의 어떤 기업에서 본 거다. 디테일은 떨어졌지만 아이디어가 좋아서 창조적으로 재개발한 거다.”

>> 좋긴 한데 너무 지엽말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아닌가?
“더 중요하고 급한 일도 안 놓친다. 국·영·수 잘하면서 암기과목도 잘해야 우등생 아니냐? 회사는 적자에, 금융위기에 휘청거리면서 선물용 초콜릿만 좋다면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 본질적인 것에 더 신경 쓰는 게 낫지 않나?
“이게 본질적인 거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큰 전략적인 비전과 디테일을 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만날 비전만 얘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사장은 계속 떠들지만 회사는 변하지 않는다. 디테일이 받쳐줘야 전략이나 비전이 실행된다.”

>> 디테일이 본질이란 말인가?
“경영학에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강조하는 디테일은 고객과의 접점, 직원과의 접점에 있는 것들이다. 이게 사소한 일인가? 경영자는 경영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소비자는 사소한 판촉물, 전단지로 그 회사를 만난다. 직원은 사장의 현란한 철학보다 사무공간, 식당, 화장실, 처우 등을 통해 회사와 사장을 평가한다.”

>> 어떻게 해야 회사의 철학이 화장실과 판촉물에까지 도달할 수 있나?
“명확하고 일관된 철학과 비전이 우선 필요하다. 자주 바꾸거나 왔다 갔다 하면 흐트러진다. 가늠자의 1㎜ 오차가 목표물에서는 수 ㎞ 오차가 되는 것이다. 둘째, 강력한 실행의지가 필요하다. 수압이 높아야 수도꼭지까지 물이 흘러간다. 셋째, 초기에는 직접 실무를 챙겨야(hands-on) 한다. 지시만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얼마 전에 현대카드 홈페이지 개편 때는 내가 실무자와 함께 한 줄 한 줄 직접 검토했다. 요즘은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이제 워낙 잘 알아서 하니까.”

>> 안 보이는 인프라도 필요할 것 같은데….
“CEO의 말이 아래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켜야 한다. 휴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했으면 휴가 가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내 앞에서 담배 피워도 된다고 했으면 회의하다가도 맞담배 피워도 괜찮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이런 분위기가 되면 안 된다. 이런 사소한 게 안 지켜지면 사장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

>> 너무 예민해서 그런 것 아닌가?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너무 무관심한 거다. 얼마 전 미술품 경매업체 크리스티와 행사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 우리 행사 준비 수준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 루이뷔통도 얼마 전 행사에서 필기구와 동시통역기를 루이뷔통 박스에 넣어 배치한 걸 보고 감탄했다. 글로벌 기업은 그런 사소한 배려에 녹는다. 사람 볼 때 뭐 보고 판단하나? 인사성, 눈빛, 옷차림, 태도 이런 거 아닌가? 디테일이 다 그런 거다.”

>> 한국에 두 세트뿐인 엘리베이터를 꼭 설치할 필요까지 있나?
“기다리는 시간이 준다. 타는 사람이 기분 좋다. 특별한 대우를 받는 직원이 평범하게 일할 리 있겠나? 비용은 좀 더 들지만 10년 이상 쓴다고 하면 연간으로 큰 차이 안 난다. 이런 거 아끼기보다는 잘못된 결정을 피하고, 술값을 줄이는 게 낫다.”

>> 사소한 것까지 챙기면서 직원들에게 잘해 주는 이유는 뭔가?
“회사가 잘되려면 직원에게 잘해 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나? 이런 걸 통해 나는 직원들이 어떤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들 모아 놓고 ‘더 열심히 해라, 더 좋은 성적 내자’고 한다고 더 좋아지나? 기념품이든 초콜릿이든 우리 회사는 최고만 고집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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