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읽기] 아이 아파도 엄마 탓, 공부 못해도 엄마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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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실비안 지암피노 지음, 허지연 옮김
열음사, 318쪽, 1만2000원

“자식이 웬수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반어법이 또 있을까.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말은, 실은 두 갈래의 뜻을 머금고 있다. 그 하나는 지극한 자녀 사랑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고, 그 둘은 어미의 숙명 같은 죄의식이다. 아동 정신분석가인 저자는 자녀에 대한 애정과 죄의식 사이에서 허둥대는 여성 노동자들을 향해 말을 건다.

직장을 다니는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을 품는다. 아이가 경기라도 할라치면 “다 내가 곁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제 가슴을 친다. 왜 일하는 엄마만 늘 죄의식에 시달리는 걸까. 책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일하는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문’이다. 저자는 엄마들을 향해 ‘죄책감을 버려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저자에 따르면 일하는 엄마들의 죄의식이란 다만 사회와 문화가 덧씌운 압박감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엄마가 직장에 나가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는 식의 편견 말이다. 이런 편견은 ‘엄마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고정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지은이는 1970년대 이후 발표된 이론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엄마의 직장 유무가 아이의 사회화 과정과 지능 발달 등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아이들의 편차는 엄마의 직업 유무가 아니라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는 양육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엄마들의 죄의식을 자극하는 또 다른 편견은 ‘아이에게 엄마만한 존재는 없다’는 주장이다. 저자에겐 이 또한 코웃음 칠 소리다. 엄마를 대신할 존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막고, 육아에 관한 남성들의 직무 유기를 정당화 하려는 논리라는 얘기다. 남성과 여성 중 한 명이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면 번갈아 가며 키워야 한다는 게 게 저자의 생각이다. ‘육아는 오직 여성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기는 인식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충고다.

저자는 책 말미에 질 높은 위탁 기관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제안한다. 그래야만 여성들이 엄마로서 노동자로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프랑스 출신인 저자의 말이 어쩐지 개운치는 않다. 프랑스는 100%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유치원(xcole maternelle)이 도처에 있을 정도로 보육 선진국이다. ‘프랑스의 여성 직장인들도 죄의식에 시달리는데, 하물며 우리는?’이란 물음이 떠나지 않는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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