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대통령께서” … 피의자 노무현은 “검사님” 서로 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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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검찰 조직과 불화(不和)했던 대통령이었다.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9일 TV로 중계된 ‘검사와의 대화’에서 “지금 검찰 상층부를 믿지 못한다”고 발언해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검사의 신문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앞자리엔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이 앉았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실 한편의 소파에서 우 과장과 인사를 나누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뒤 조사에 들어갔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 뒤쪽에 앉아 답변을 도왔다. 우 과장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께서는…’이라고 호칭했고, 노 전 대통령도 우 과장을 ‘검사님’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사 전 과정을 특별조사실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카메라로 모니터링했다. 그는 특별조사실 옆 사무실에 있는 조재연 검사를 통해 우 과장의 신문을 실시간으로 지휘했다. 또 ▶대통령 업무와의 관련성 ▶100만 달러 ▶500만 달러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 등 조사 내용이 달라질 때마다 이주형·이선봉·김형욱 검사 등 중수부 검사 3명이 차례로 특별조사실에 들어가 신문에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실장, 우 과장과 배석 검사 모두 양복 상의를 벗은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했으나 대부분의 질문엔 “맞다” “아니다”로 짧게 답했다. 일부 민감한 내용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고 했고, 본인이 해명하고 싶은 부분에선 길게 답변했다는 것이다.

조사 시간이 길어지자 노 전 대통령은 소파 쪽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등 수차례 휴식을 취했다. 오후 6시30분엔 외부에서 배달돼 온 ‘곰탕 특’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 전 비서관은 구치소에서 대검 청사로 불려와 대기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의 설명이 박 회장의 진술과 다른 부분이 있어 대질 조사를 하려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이날 1시19분 변호인단과 함께 대검 청사에 도착했다. 오전부터 진을 친 보수단체 회원들은 ‘구속 수사’를 외쳤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은 지지 시위로 그를 맞았다. 조기숙 전 홍보수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등 지난 정부 인사들도 가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허영 대검 사무국장의 안내로 7층 중수부장실로 올라가 이 중수부장과 10분가량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 중수부장은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다. 이 수사를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조사)시간도 많지 않으니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잘 알겠다. 면목이 없다”고 답했다고 홍 기획관은 전했다.

이철재·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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