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질문 수백 개는 국민의 질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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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오늘 국민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국민은 서울 연희동에 대해 불쾌하고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전·노는 아직도 국민의 심기를 공격하고 있다. 한 사람은 거액 비자금이 있지만 추징금을 피하고 있고, 다른 이는 형제와 비자금 재산 송사(訟事)를 벌이고 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상도동·동교동으로 들어갔다. 자신들은 안전하게 퇴임했지만 아들들의 비리와 외환위기 같은 사건으로 그들은 한동안 집 밖엘 나오지 못했다. 국민은 경남 봉하마을만큼은 다른 동네가 되길 바랐다. 검소하고 청렴한 전직 대통령과 가족·친지가 주민과 관광객의 애정을 받으며 소박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그런 ‘대통령의 마을’이 되기를 바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무수한 실정(失政)으로 나라를 흔들었어도, 국민은 그가 퇴임 후의 봉사활동으로 그런 부채를 갚기를 간구했다.

그런 봉하마을이 오늘 아침 대(大)소동의 출발지가 된다. 피의자 노무현은 마을을 나서고, 국민의 분노와 실망은 TV 카메라에 매달려 내내 고속도로를 달릴 것이다. 그러곤 전직 대통령은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 구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 시대의 장남이 되고 싶었다는 노무현. 그는 새 시대는커녕 구 시대의 형제 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특별조사실에 들어설 것이다. 형 건평씨가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간 바로 그 방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다. 노무현과 패밀리, 그리고 또 다른 ‘패밀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검찰은 수백 개의 신문(訊問) 사항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한다. 그 질문은 검찰의 질문이 아니다. 국민의 질문이다. 피의자 노무현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속죄의 기회라 생각하고 진실을 털어놓아야 한다. 자신의 소리(小利)를 챙기는 변호사 노무현보다는 국민의 상처와 역사의 심문(審問)에 겸허한 전직 국가원수 노무현이어야 한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100만 달러를 받아 빚 갚는 데 썼지만 그 빚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채무가 사실이라면 노 대통령은 재임 중 이런 거액의 채무를 빼놓고 재산을 허위 신고한 셈이 된다. 그런 거액의 채무를 부부간에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몰랐다 해도 나중엔 들었을 것 아닌가. 친구인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2억원이 넘는 국고를 횡령해 비축해 놓았다고 한다. 이 돈은 노무현을 위한 돈인가, 아니면 자신이 챙기려 한 것인가.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1억원짜리 회갑 선물 시계는 어떤 생각에서 받은 것인가. 그가 그렇게 위한다는 서민·빈민은 수백만원이 없어 눈물을 흘리는데…. 퇴임 후에는 왜 박연차 회장에게서 15억원을 빌렸는가. 넉넉한 생활비를 국가가 주는데, 그리고 강금원 회장을 비롯한 든든한 노사모 지지그룹이 있는데 그런 거액이 왜 필요했는가. 차용증이 있다고 하지만 갚지 않는 채무가 무슨 채무인가. 아들과 조카사위는 대통령 아버지의 돈 많은 친구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았다. 대통령은 몰랐는가. 국민이 들어야 할 얘기는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