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13개국 80억불 협조융자에 고금리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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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압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금리와 정부보증 등을 놓고 입체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유럽국가들은 우리 정부의 미국 일변도 협상에 반발하고 있다.

15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미국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단기외채를 장기로 전환해주는 조건으로 고금리와 정부 지급보증을 요구한데 이어 미국 정부도 선진 13개국의 80억달러 협조융자와 관련, 고금리와 정부 지급보증 등을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국제금리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리보 (런던은행간금리)에 4~6% 포인트를 덧붙인 수준의 고금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정부가 협조융자 조건으로 고금리와 정부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며 “이밖에도 몇가지 요구사항이 더 있다” 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 정부는 미국 금융기관들과의 협상 결과를 지켜본 뒤 협조융자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 15일 전격 방한, 林부총리와 심야회동을 갖고 고금리 등 직접적인 자금지원 조건외에도▶외국인 적대적 인수.합병 (M&A) 허용, 외국환관리법 폐지 등 한국이 미국에 개별적으로 약속한 내용의 조속한 이행과▶각종 외환통계의 수시공개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林부총리는 “그러나 협조융자에 참여하는 다른 국가들은 미국만큼의 고금리를 요구하고 있지 않아 반드시 80억달러 전부를 미국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을 것” 이라고 밝혀 나머지 국가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금리를 낮출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외국 민간금융기관들과의 장기외채 전환 협상과 관련, 林부총리는 “일부 외국은행들이 장기간 고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며 “만기 전이라도 중도에 자금을 상환할 수 있는 콜옵션을 관철시켜 부담을 덜겠다” 고 말했다.

그는 또 “국채 발행보다는 지급보증을 통해 상환을 연장하고 신용평가 등급이 올라가면 그 뒤에 국채발행을 추진할 방침” 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국채를 발행, 단기외채와 맞교환하자는 'J P 모건안' 보다는 지급보증 및 신디케이트론을 선호하는 '골드먼 삭스안' 에 가까운 것이다.

한편 유럽연합 (EU) 국가들이 한국의 외채협상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주한 EU국가 대사관 의장국인 영국의 스티브 브라운 대사는 최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와 林부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이같은 유럽국가들의 뜻을 전달했다.

브라운 대사는 또 오는 20일 영국대사관내 아스톤홀에서 유럽 국가들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고현곤·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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