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금리·기업 자금경색]왜 이렇게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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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외환위기에서 촉발된 극도의 자금경색과 살인적인 고금리가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중견기업의 부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쓰러져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사정이 낫다는 대기업들도 30%가 넘는 고금리에 헉헉대며 하루를 넘기는 실정이다.

그나마 돈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5대그룹, 그것도 주력 5개사를 제외하고선 금리를 불문하고 돈구경하기가 힘들다.

기업의 자금담당자들은 은행과 종금사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고 급한 김에 사채업자 사무실도 찾아가지만 소득이 없다.

“우리도 살아남기가 힘겨운데 개별기업 사정을 일일이 들어줄 여유가 없다” 는 설명에는 할 말을 잃는다.

금융전문가들은 이같은 자금난의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종금사 영업정지와 금융권의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맞추기 때문에 빚어진 금융권의 자금중개기능 마비현상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부실 종금사 처리가 지연되면서 종금사의 단기자금 중개기능이 사실상 마비된데다 은행권의 BIS자기자본 비율 부담 때문에 신규대출 중단은 물론 기존 여신의 회수가 벌어지고 있다” 고 설명했다.

여기다 종금사가 변칙적으로 보증해줬던 20조원 규모의 기업어음 (CP) 만기연장이 중단된 것도 기업자금 사정 악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영업중인 종금사들도 BIS기준을 맞추기 위해 새로 만기가 돌아오는 CP의 보증을 한사코 마다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의 CP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줄어든 셈이다.

정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이 수출환어음 매입을 여전히 꺼려 수출기업들이 결제시점까지 추가자금을 메워야 하는 부담도 늘어났다.

또 한가지 요인은 국제통화기금 (IMF) 이 구제금융조건으로 요구한 긴축과 고금리정책이다.

당장 국가부도 목전에서 IMF구제금융에 매달린 처지에 IMF의 긴축.고금리 처방에 대해 토를 달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30%를 넘는 고금리로는 견딜 기업이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금리가 1% 오를 때마다 제조업 전체기업이 져야할 금융비용 부담은 1조8천억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금리가 22%를 넘을 경우 경제성장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기업부도가 줄을 잇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崔公弼) 연구위원은 “30%가 넘는 고금리로는 외채상환을 위한 최소한의 성장여력마저 잠식될 우려가 크다” 고 진단했다.

“기업이 다 망하고 나서 IMF구제금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는 한 대기업 자금담당자의 푸념은 최근 기업자금난의 실상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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