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염탐 ①] 아빠는 ‘불륜’도 참 아빠답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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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보면 남성의 로망이자 착각을 볼 수 있다. 극중 정교빈(변우민)은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매력에 빠졌다고 생각 혹은 착각을 한다. 물론 어느 정도 그 기대심리에 부응하는 여성들의 행동패턴이 나온다. 정교빈에게 식사를 하자 요청하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한다. 이런 여성들의 행동에서 정교빈은 자신감을 얻고 과감한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여자들은 과연 정교빈을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것일까?

이런 카사노바가 되고 싶은 남성의 희망은 영화 ‘7년만의 외출’에 잘 나타나 있다. 1955년 작품인 이 영화는 환기통의 바람으로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올라가는 장면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시대의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가 보여주는 백치미는 남자들의 단순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혼 7년차의 리처드는 아내와 아이를 피서지로 보내고 오랜만의 해방감을 맞이한다. 남자가 혼자 있으면 딴생각을 하는 법. 2층에 이사 온 아름다운 아가씨(마릴린 먼로)와 아슬아슬한 이벤트를 시작한다. 극중 리처드의 심리변화는 유부남의 바람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금발의 아가씨를 집으로 초대하고 온갖 환상에 사로잡힌 리처드의 모습은 ‘불륜도 참 아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막연한 불륜의 상상 속에서 모든 여자들은 리처드에게 매달린다. 여성들의 끝없는 구애 속에 리처드는 항상 젠틀하지만 마초로 남아 있는다. 모든 대사는 명령형이며 이미 바람난 남자가 가족 걱정을 한다. 선을 넘은 남자에 대한 판결은 아내의 몫이란 걸 모르는지 힘들어도 자신을 잊으라는 망언을 서슴없이 외쳐댄다. 현실 속에서 리처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미인에게 늑대의 본성을 숨긴 채 젠틀하고 다정한 남자로 비춰지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모든 남자들이 연애에서 가장 어렵다는 여자친구 말에 무조건 맞장구치기까지 구사한다. 리처드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은 먼로의 딱 한마디 대사가 만들어 놓은 걸작이다 “전 집에선 냉장고에 팬티를 넣어놔요.” 더운 여름에 좀 시원해보고자 냉장고에 팬티를 넣어뒀다는 이 백치미 철철 넘치는 대사 한 마디는 상상 속의 마초로만 살아가던 아빠를 단박에 햄릿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로 고민했다면 리처드는 바람을 필까 말까를 고민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남녀의 연애에서 상대방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한번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의 모든 행동이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보인다. 리처드 역시 평범한 남자답게 쉽게 걸려든다. 먼로의 행동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리처드. 심지어 직업이 출판 편집자라 상상력도 남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피아노에 앉아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는 두 사람. 이들의 모습에선 연애에 남자와 여성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격정적인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좋아하는 남자, 젓가락 행진곡이라도 같이 연주하고 싶은 여자. 결국 아빠 리처드는 사고를 친다. 강제 키스를 실행했지만 실패한 리처드. 처음에 그에게 다가선 것은 양심의 가책이었다. 두 번째로 다가온 것은 소문에 대한 공포였다. 자신의 행동이 동네방네 소문이 나고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돼 이혼을 당하는 상상만으로도 리처드는 끔찍했다. 참 아빠스러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직장 그리고 가족을 잃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리처드. 어쩌면 아빠라는 테두리에 갇혀 이미 자신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보면 바람남 정교빈은 아내들에게 항상 당당하다. 물론 그 뻔뻔함이 징글징글하기도 하지만 정교빈은 아빠의 테두리가 아닌 인간 정교빈의 영역만큼은 확고히 지키고 있다. 언제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그 뒤가 가족이다. 그러니 가족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 한다. 사실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그 불타는 감정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 하지만 아빠와 아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지겨운 것은 아닐까? 때론 일탈을 꿈꾸며, 가끔 이기적인 아빠, 엄마가 된다면 이들의 유효기간은 평생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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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방송팀 강대석 기자, 진행 주혜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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