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스타 ③ 김혜수『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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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안녕하세요. 김혜수입니다. 요즘 갑자기 미술 관련 기사에 등장해 놀라신 분들도 계시죠? 그냥 취미로 한 일인데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의외로 그림이 비싸게 팔려 저도 당황했는데 본래 그림값 절반은 난치병 환자를 돕는데 쓰기로 한 거였고 나머지 절반도 개인적으로 자선 기관에 기부했어요. 배우가 그림 판 돈으로 먹고 살면 안되잖아요. 하하.

책을 읽을 때는 안경을 쓰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뒹굴게 된다는 김혜수.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집안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모습의 사진을 김혜수가 보내왔다.

지난해 가을 이후로 죽 쉬고 있어요. 바깥 출입은 거의 안 한 채 조카와 놀아주기, 엣지-야야-하치(김혜수가 기르는 강아지 이름. 엣지는 록 그룹 U2의 멤버에게서, 하치는 영화 ‘하치 이야기’에서 따 왔다) 돌보기, 책 읽기가 주요 일과에요.

본래 책을 좋아하다 보니 한창 흥미진진한 대목에선 누가 전화를 해 불러내도 꼼짝 하지 않아요. 이번엔 휴식이 좀 길다 보니 웬만큼 화제가 된 책은 다 읽어버렸고, ‘좋은 책좀 소개해 달라’고 지인들을 괴롭혀서 읽게 된 책이 바로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존 쿳시의 『추락(Disgrace)』이에요. 최근 읽은 책 중에선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정작 추천해 준 사람은 ‘한 번 읽어서는 재미 없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던데, 저는 푹 빠져들 정도로 몰입하게 되더군요.

주인공인 50대의 미국 대학교수 루리는 한마디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물인데,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대학에서 쫓겨난 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딸 루시를 찾아가요. 거기서 딸이 처해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척박한 현실을 보게 되죠. 결국 딸이 흑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자 루리는 분노하지만, 루시는 오히려 이것이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죠.

미국 대학교수가 대표하는 서구의 지성과 오만이 아프리카라는 원시의 대륙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비슷한 이유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 코맥 맥카시의 『로드(The Road)』도 기억에 남아요. 인류의 문명이 무너진 근미래의 지구에서 두 부자가 인간 사냥꾼들과 맞서 살아남는 얘기거든요. 인간의 존엄이나 진보를 더 이상 꿈꿀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가슴이 와 닿았어요.

배우이다 보니 책을 읽을 때에도 이걸 영상으로 옮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해요. 특히 책 속의 여성 캐릭터들에 내 자신을 비춰 보는게 연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참, 그러고 보니 요즘 좋은 작품 어디 없나요?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이제 또 일을 해야 하는데….

정리=송원섭 기자

김혜수씨 기증한 100권, 김해 내동중학교로

김혜수씨가 기증하는 책 100권은 경남 김해시 내동중학교 1학년 9반에 전달됩니다. 이명희 담임교사는 “아침 독서시간을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연을 올려 행운을 잡았습니다. 내동중학교는 남녀공학이지만 이 교사가 맡고 있는 반은 남학생만 38명이라네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이 발달하는 시기이다 보니 학생 대부분이 자기조절력이 부족하고 아직까지 인생의 목표를 정립하지 못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군요. 이 교사는 “만약 책을 보내주신다면 아침 독서시간을 잘 이끌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책 읽는 스타’가 책을 목말라 하는 곳에 100권의 책을 선사합니다. 캠페인 전용사이트(http://joins.yes24.com)에 사연을 올려주세요. 매주 한 곳을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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